mercredi 4 février 2009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 /김흥식 기획, 김성희 해설 / 서해문집 / 2009년 01월

신문 기사를 통해 우리 근대사의 주요 사건을 더듬어 본 책이다. 근대사를 다양한 시각과 방법으로 분석한 책은 많지만 신문 기사만으로 역사의 흐름을 엮어낸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우리 근현대사가 오늘날 살아 숨 쉬는 사건으로 되살아나도록 구성, 편집, 해설했다.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부터 1945년까지 국내외에서 발간되던 우리나라 신문 총 21종에서 주요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신문 기사를 가려냈으며, 최초의 필화 사건을 불러온 1884년 1월 30일자 ‘중국 군인의 범죄’부터 1945년 9월 11일자 ‘태평양전쟁 종전협정 조인식’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대를 관통하는 주요 역사적 사건들을 총망라했다.

총 141건의 기사를 67건의 대항목과 17건의 중항목으로 분류했다. 이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시간 흐름을 보여 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서로 연관된 기사를 시기나 신문 종류에 관계없이 한데 모았음을 말한다. 또한 한 사건을 놓고 다른 논조를 보이는 경우 두 신문을 같이 실었다.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즈음의 신문을 그대로 보여 주고 그 기사를 그대로 적어 오늘날 독자들이 과거 신문을 읽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따라서 자료로서의 가치는 물론이고, 기사 원문을 통해 당시 사회적 동향과 인식을 엿볼 수 있다.

1884부터 1910까지

화병범죄華兵犯罪
독립신문 창간
고종 환궁, 아관파천 1년
대한제국 선포
만민공동회 열리다
영일동맹
러일조약
을사늑약_시일야방성대곡 지지 / 민영환, 조병세 자결 / 고종 변명서
통감부 설치
국채보상운동에 나서다
헤이그밀사사건
순종, 황제위 물려받음
한일신협약
군대, 해산시키다
의병의 활약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
안중근, 이토 암살하다
이완용 피습 / 이완용 암살단 음모사건
헌병경찰제 실시

1910부터 1930까지

한일합병
105인 사건 판결
고종 승하 / 고종 독살설
3.1운동 / 3.1운동 대공판
대한민국임시정부 구성
서상한 폭탄 불발사건
국경의 무장단체 / 봉오동 전투
연통제 공판
산미증식계획 / 토지개량사업
의열단과 '조선혁명선언'/김상옥, 종로 경찰서에 폭탄 던지다/나석주, 동척에 폭탄 던지다
간토대지진 / 조선인 폭동설
암태도 소작쟁의 사건
을축년 대홍수
신사참배
순종 승하와 6.10만세운동
군자금 조달
대정 사망, 소화 원년
신간회 창립
원산 총파업
아나키스트 검거
광주학생항일운동 / 광주학생항일운동 파급
평양 고무공장 파업

1931부터 1945까지

만주사변
이봉창, 천황에게 폭탄 던지다
윤봉길 훙커우 공원 의거 / 훙커우 공원 의거의 영향
안창호 공판 / 수양단 사건
조선어사전 편찬 추진
조선농지령 공포
공산주의자 이재유 민족혁명당 활동
손기정 베를린 마라톤 우승 / 일장기 말소 사건
보천보 전투
중일전쟁
연해주 동포 강제 이주
제3차 조선교육령
최초의 지원병 전사
국민 징용령 발동
창씨개명
조선.동아일보 폐간
쌀 배급제 실시
임시정부 승인설
태평양전쟁 시작되다
징병제 준비하다 / 징병제 실시
여자정신대근무령 공포
포츠담 선언과 소련 참전
원자폭탄, 히로시마에 떨어지다
일본, 항복하다
정전협정 조인 / 개전에서 종전까지 / 종전협정 조인식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 다시 사회구성체론으로?/그린비 + '연구공간 수유+너머' 엮음 / 그린비 / 2008년 10월

단행본(book)의 깊이와 잡지(magazine)의 넓이를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매체인 부커진bookagine 2호가 나왔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를 '사회구성체론'의 입장에서 다룬다. 자본주의와 축적체제, 계급적 문제와 대중운동의 문제를 실천적 관심 속에서 이론적으로 분석하려는 점에서 '사회구성체론'의 입장을 가진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와 자본주의의 증권화 양상에 대한 분석, 불안의 정치체제, 비정규직과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이해 등을 다룬 특집글들과 2008년 촛불시위의 전개과정에 대한 고병권의 탁월한 분석 및 김경욱 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 인터뷰는 지금의 한국사회가 어느 지점에 서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작동해 갈지를 보여 준다.

PHOTO ESSAY
2008년 촛불시위와 대중의 흐름(오하나)

EDITORIAL
편집자 서문

ISSUE
01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과잉-제국주의(이진경)
02 유연성의 축적체제와 시뮬라크르 자본주의 (이진경)
03 불안시대의 삶과 정치(고병권)
04 신자유주의와 욕망의 안보체제(박정수)
05 유연화체제의 프롤레타리아트, 비정규직(조원광)
06 흐름의 공간과 분자적 미디어(최진호)

INTER-VIEW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 생존의 연대 : 김경욱(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 + 고병권(연구공간 수유 + 너머 추장)

ESSAY
혁명 앞에서의 머뭇거림 : 2008 촛불시위의 발발과 전개(고병권)

지방은 식민지다!/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10월

오랫동안 전주에 살며 전북대에서 강의해온 강준만 교수가 지방자치, 지방문화, 지방언론의 현주소를 날카로운 눈으로 들여다보고 그 해법을 제시한 책. 지은이는 "맛이 간 지 오래인 종속이론의 아류"라는 멍에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내부식민지론'이 지금의 지방문제를 들여다보는 데 유용한 잣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지방의 현실을 토로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한다.

앙정부는 지방을 ‘은전’이나 베풀면 되는 ‘거지’ 취급하지 말고 일관되고 공정한 원칙을 적용해야 하며, 지방도 "지역의 우수한 인재를 서울로 보내는 걸 지역발전 전략으로 삼는 '내부식민지' 근성"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안의 실천을 강조하는 것. 또한, 지은이의 전공이 신문방송학인 만큼 지방언론의 살 길에 대해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머리말: 지방은 ‘내부식민지’다!

1장 ‘내부식민지’의 정치적 현실
왜 ‘독재권력’ 없는 ‘개발독재 논리’인가?
지방의원은 ‘국회의원 몸종’인가?
서울에서 밀려나면 죽음인가?
‘각론’은 없고 ‘총론’만 있는 한탕주의
줄 서지 않으면 죽는가?
꼭 권력에 목숨 걸고 살아야 하나?
왜 ‘내부식민지’가 지속되나?

2장 서울의 오만와 편견
지방은 거지인가?
수도권엔 현금, 지방엔 어음?
‘지방균형발전의 미망에서 깨어나자’?
청계천 복원은 건설업자들의 ‘자선사업’인가?
‘글로벌?내셔널?로컬 스탠더드’는 어떻게 다른가?
지방엔 ‘티핑 포인트’가 없는가?

3장 ‘내부식민지’의 토대, 교육
왜 오늘도 60명이 전북을 떠나는가?
무엇이 한국인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가?
왜 ‘교육분산’을 외면하는가?
왜 사교육에 대한 착각과 오해를 하나?
SKY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나?
왜 SKY는 인해전술에 매달리는가?

4장 지방의 정치와 행정
정치?행정의 사유화, 이대로 좋은가?
‘낙하산 실명제’는 어떤가?
왜 ‘스톡홀름 신드롬’인가?
단체장 집무실이 넓으면 일 잘하나?
왜 ‘참여 전북’으로 가야 하는가?

5장 지방의 주목투쟁
‘광고?홍보 독과점’을 어찌할 것인가?
왜 ‘통계 전쟁’이 필요한가?
왜 튀지 않으면 죽는가?
왜 ‘시민기자 혁명’인가?
왜 ‘눈높이 저널리즘’인가?
왜 ‘공익 마케팅’이 필요한가?

6장 지방신문의 현재와 미래
‘공무원 신문’을 아십니까?
과연 무엇이 진정한 자존심인가?
지역언론, 어떻게 죽일 것인가?
왜 ‘지방신문 혁명론’인가?
‘민원 해결 저널리즘’은 안 되나?
왜 ‘블루오션’으로 가야 하나?
지역신문 구독하면서 욕하면 안 되나?

7장 지방방송의 현재와 미래
왜 ‘소통구조의 개혁’은 외면하나?
왜 ‘여의도 방송’에서 ‘전국방송’으로 가야 하나?
왜 ‘방송의회’ 구성이 필요한가?
왜 방송 ‘광역화’는 자승자박인가?
왜 지방을 둘로 나눠야 하나?
왜 콘텐츠 수용환경 변화가 필요한가?
왜 지역방송이 ..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 노명우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8년 10월

화려한 유혹으로 사람들 삶을 움직이는 텔레비전에 대한 사회학적 성찰이 담긴 책. 지은이는 "극단적으로 매개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세련된 미디어가 사람들의 삶을 통째로 흡입하는 이 위력적인 시대에, 거대화된 힘으로 조직된 사회 속 개인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지금의 나를 만들고 또한 여전히 만들어가고 있는 텔레비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텔레비전 없는 유년과 신기술 이후의 삶을 불연속적으로 경험한 1세대와는 달리, 텔레비전과 함께 성장한 2세대 텔레비전 키드이자 텔레비전 없인 살 수 없는 평범한 시청자"임을 자인하면서, "소란스럽게 신기술의 경이로움에 대해 떠들던 수다스러운 담론이 사그라지고, 텔레비전 자체보다는 그 미디어 속 프로그램이라는 작은 단위로 관심이 옮아간 현실"에 의문과 아쉬움을 던진다.

또한, "사라져버린 시청자의 관점에서, 관습이 발휘하는 착시 효과에 의해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텔레비전이라는 전자 창문 속에 담겨진 문화형식의 결을 발견하려 한다"는 포부를 밝힌다. 이 책은 그렇게 가정에 침투한 낯선 문명의 이기가 '또 하나의 가족'으로 정상화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그 ‘또 하나의 가족’을 낯선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이다.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 텔레비전 카드, 학자가 되다

ON 텔레비전을 켜다
1.매개된 삶은 인간의 운명이다
2.이미지와 텍스트의 경쟁 시대
3.누가 스크린을 살해했는가

VOLUME 텔레비전과 포드주의
1.포드주의의 학습장
2.볼륨 장치와 매스 커뮤니케이션
3.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경제학

CHANNEL 텔레비전과 모더니티의 시공간
1.채널, 거대한 일방통행로
2.사적 공간에 공적 공간이 침투하는 길
3.시청자가 호명당하는 통로
4.거실 속의 외부 세계
5.거실로 모더니티의 시간이 쏟아지다

OFF 텔레비전을 끄다
1.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나타내는 문화적 징후들
2.뉴 미디어, 상충하는 의사소통 형식
3.왜 오프 버튼을 찾아내야 하는가

에필로그 - 텔레비전 시대, 살 것인가 살아질 것인가
미주
도움 받은 글

조선 아고라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08년 10월

태조와 태종 연간에 벌어진 한성 천도 논쟁, 세금제도의 개혁을 둘러싼 세종 시대의 공법 실시 논쟁, 현종 시대 명분과 학문 사이에서 벌어진 1.2차 예송 논쟁, 새로운 문체를 금지한 정조 시대의 문체반정 논쟁까지. 조선시대 벌어진 격렬한 토론들을 실록과 문집에 의거하여 재구성하였다.
논쟁1. 한성 천도 논쟁
한성 천도 논쟁 일지
주요 인물
들어가는 글 - 서울 이전 서울의 역사
천도의 첫 번째 발안자, 태조 이성계
첫 번째 수도 예정지, 계룡산
천도의 또 다른 걸림돌, 중국과의 외교 분쟁
새로운 도읍 예정지 무악, 그리고 풍수지리의 대두
무악 도읍 토론회
정종, 개경으로의 환도
태종, 두 번째 천도 논쟁
훌륭한 핑곗거리, 한양 천도
막판 뒤집기, 아버지의 부탁
한성인가, 무악인가? 2차 토론회
도읍의 운명을 정한 동전 던지기
맺음말 - 태조와 태종, 신하를 휘두르다

논쟁2. 공법 실시 논쟁
공법 실시 논쟁 일지
주요 인물
들어가는 글 - 토론왕, 세종
1차 공법 시행 논의
조선 최대 규모의 관리, 백성 합동 여론조사
9년 후, 2차 공법 시행 논쟁
사람이 할 일을 다했거늘, 하늘이 따라주지 않다
난장판 토론, 그리고 날치기 통과
계속되는 시행, 계속되는 반대
마침내 시행!
세종,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다
또다시 시작된 공법 토론
나물을 먹는 백성들, 청안현의 토지 구획 실험
맺음말 - 조선 최대의 마라톤 토론

논쟁3. 1차 예송 논쟁
1차 예송 논쟁 일지
주요 인물
들어가는 글 - 사대주의의 폐해, 예송 논쟁
예송 논쟁의 원인
효종의 승하
허목 VS 송준길, 첫 번째 논쟁의 막이 오르다
실록을 참고하다
송시열, 반격에 나서다
윤선도, 불꽃에 기름을 퍼붓다
학술적인 토론에서 패싸움으로
비난하는 자와 옹호하는 자
서인 원두표, 3년복을 옹호하고 나서다
1차 예송 논쟁의 정리
맺음말 - 예송 논쟁, 또 하나의 마무리

논쟁4. 2차 예송 논쟁
2차 예송 논쟁 일지
주요 인물
들어가는 글 - 예송의 후폭풍
1차 예송에서 2차 예송으로
2차 예송 논쟁의 시작
현종, 서인에게 칼을 빼들다
왕과 신하, 맞장을 뜨다
2차 예송 논쟁, 둘째 날
현종 VS 김수흥, 한판 붙다
2차 예송 논쟁의 종말
그 후의 이야기
맺음말 - 이기심과 아집의 대결

논쟁5. 문체반정 논쟁
문체반정 논쟁 일지
주요 인물
들어가는 글 - 문체반정의 시작

jeudi 29 janvier 2009

[서평] 김기협 역사 에세이 〈뉴라이트 비판〉 - 오마이뉴스 / 2009-01-23

[서평] 김기협 역사 에세이 <뉴라이트 비판>
출처 : 뉴라이트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라 - 오마이뉴스

믿기진 않지만 이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역사 교과서 파동, 건국절 논란, 친일파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데 있어 일반 국민들에게 시종일관 호통과 독설로 가르치려는 부류가 등장한 것이다. 어르고 달래도 욕먹을 판에 오히려 당당한 자태를 보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당혹스러워 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꾸준히 세력을 키우다가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제철 만난 고기마냥 날뛰는 '뉴라이트'를 이르는 말이다. 뉴라이트 세력은 이미 현 정권의 코드에 맞춰가며 자신들의 몸집을 거침없이 불려나가고 있다. 문제가 되더라도 국가 성장에 도움이 된다거나 다수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 무조건 비판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렇지도 않다는데 있다.

급하고 독하다. 수면 아래에서 숨죽이던 그들은 호기를 만나 그동안 풀지 못했던 한을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토해내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광복절을 지워버리고 그 자리를 '건국'으로 바꾸며 역사 자체를 바꾸어 놓으려는 시도, 한국 사회를 '승자독식사회'로 구축하려는 가혹한 경제관까지. 내놓는 주장들이 하나같이 황당한 탓에 어이가 없어 차라리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들은 어디에서 왔고, 실체는 무엇일까.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대체 어떤 곳일까.

'합리적 보수'라 불리는 김기협의 역사에세이 <뉴라이트 비판>은 최근 몇 년 사이 문제가 되어온 극우파 난동을 밀도 있게 분석하며 비판하고 있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의 연재분을 모은 것으로 책은 특히 서울대 이영훈 교수와 안병직 중심으로 뭉친 시대정신(구 뉴라이트재단)에 대한 종합안내서 역할을 한다. 시종일관 날렵하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문체가 인상적이고, 또한 편향적이지 않은 시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신뢰감을 더욱 두텁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먼저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뉴라이트의 인간관을 문제 삼는다. 식민지 시대부터 독재 시대까지 줄곧 강자가 군림하던 한국 사회의 뼈아픈 과거사를 왜곡시키며 끊임없는 경쟁과 생존을 통해 살아남은 이가 승리하고 이들이 성공이자 역사임을 주입하려는 것이다. 노조와 시위, 시민단체 등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 대부분이 절대적인 악이나 적으로 간주됨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을 꽁꽁 막아놓고서 분노할 수 있도록 유도한 뒤에, 사건이 터지면 그들을 '폭도' 내지는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폭력단체'로 손쉽게 규정해버린다.

한국의 역사 뿐 아니라 문명 자체를 자본주의 중심으로 재해석하려는 뉴라이트의 시도는 자연스럽게 식민지 시대 옹호와 건국절 논란, 그리고 역사 교과서 파동 등의 문제점을 낳고 있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결국 조롱거리에 불과하고, 역사 훼손과 은폐는 성장을 위한 동력으로 이용한다. 뉴라이트에 의해 식민지 시대는 근대화에 도움이 된 감격적인 축복의 시간으로 둔갑해 버렸고, 친일파를 언급하는 일은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되었다. 광복절을 지우개로 지우더니 대신 미국의 이익에 따라 강요된 건국절을 우리나라의 상징으로 치켜세웠다.

이승만의 부정부패와 무능함, 박정희의 폭압과 독재의 역사는 철저히 거세되었으며 혁명은 기껏해야 불만투성이들의 법을 어긴 행동으로 간주되고 있다. 미국조차 무너뜨린 신자유주의 정책은 아직까지도 최고의 신앙으로 여겨진다. 물론 그것이 진정 사회발전과 그들이 내내 외치는 일류 선진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면 아마 지금과 같은 거대한 반발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딱히 그럴 가능성이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 데다,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 사회 분열까지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학은 인간성을 경험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진실과 정의는 다름 아닌 사람들의 관계와 사랑 속에서 발전한다. 헌데 모든 가치를 재물에 종속시키는 뉴라이트에는 근본적인 '사람'이 배제되어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과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인간 위에 유전자를 올려놓아도 많은 사람이 아직까지 그 사실을 좀처럼 신뢰하지 않는다.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숨 쉬고 흐르는 것은 돈보다는 사람이고 사랑이라는 믿음이 더 강한 탓이다.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때때로 이기적인 사건과 쟁점들이 우릴 괴롭히더라도 세포로 조직된 사람이란 존재는 쉽사리 그걸 놓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보수주의자다. 이런저런 불평을 하기는 해도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괜찮은 사회라는 생각이 20년래 바뀌지 않는다. 다들 지금까지 살아온 식으로 꾸준히 애쓰며 살아가면 충분히 좋은 사회를 이뤄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나는 혁명적 변화도 기적적 변화도 바라지 않는다. (본문 211쪽)

위에서 알 수 있듯 그가 뉴라이트를 비판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엄청난 변화나 혁명을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 자신과 우리 곁에 머문 사람들, 때로는 밉더라도 기꺼이 보듬어야 마땅한 우리네 이웃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생각하는 성장이고 발전이다. 정권과 자본의 비호를 받는 소수만이 살아남고, 대부분의 서민은 아래에 깔리는 성장이란 결국 현 시대의 음울한 현실을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더군다나 그들이 추구하는 이기적인 인간의 경쟁유도는 결국 신자유주의의 폐막과 더불어 지금과 같은 경제 불황을 가져오지 않았던가. 이래저래 뉴라이트의 주장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버렸다.

뉴라이트는 최근까지 보수언론의 1면에 광고를 내며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고, 오늘자 조선일보 1면에도 역시 용산 참사와 관련한 광고문을 실었다.(물론 책에서 다루는 재단과는 다른 ‘뉴라이트전국연합’에서 낸 것이다.) 불법폭력시위, 폭동이란 말이 글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희생된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에 대한 원인과 근본적인 대책 따위는 그들의 머리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오로지 공격적인 폭언과 행동뿐이다. 그러니 맨 마지막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문장이 빈말처럼 들릴 수밖에.

또한 이런 문장도 달렸다. '우리 모두 단합해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합시다!' 단합이라, 내가 말을 잘못 들었나? 눈이 어두워진 탓일까. 뉴라이트의 역사관과 정책에는 뚜렷한 체계가 없다. 단체 자체가 여러 군데로 분산되어 있는 데다, 문제가 생기면 자신들의 의견이 아니라면 책임회피에 급급하다. 쉽게 말해 그들끼리도 뭉치질 못한다.

황당한 데다 기괴하고, 그것도 모자라 근본도 없으니 사람들이 설득당할 리 만무하다. 시종일관 호통과 독설을 내뿜으며 위에서 아랫것 내려다보듯 훈계하느라 정신없는 그들이 대뜸 '단합'이란 단어를 꺼내들었다. 입에서는 나오는 건 헛웃음이고,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건 그럼에도 그들이 정권과 집권여당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의 4년이 걱정스럽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왜곡과 날조가 판칠 것인가.

출처 : 뉴라이트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라 - 오마이뉴스

佛선교사의 ‘조선시대 감옥’ 체험기 - 문화일보 / 2009-01-23

나의 서울 감옥생활 1878 / 펠릭스 클레르 리델 지음, 유소연 옮김 / 살림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포도청) 죄수들은 주로 세 부류로 나뉜다. 도둑, 채무 죄수, 그리고 우리 같은 (천주교) 신자들, 이렇게 세 부류인데, 옥 안에는 신자들이 대다수였다. 이 세 부류의 죄수들은 각각 다른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도둑들의 처지는 가장 비참하였다. 대략 30여 명이 있었는데, 밤이고 낮이고 발에 차꼬를 차고 있으니 모두 병에 걸린 상태였다. 옴이 온 몸에 올라 상처 부위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조선교구 제6대 교구장으로 1877년 11월 입국해 포교활동을 펼치다 석 달 남짓 지난 다음해 1월28일 포도청 포교들에게 붙잡힌 펠릭스 클레르 리델(1830~1884) 주교가 남긴 서울 감옥 생활 회고기는 19세기 조선의 감옥문화를 잘 보여주는 1차 사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책은 이명복(李明福)이란 한국 이름을 가진 리델 주교의 회고록을 아드리앵 로네 신부가 편집·정리하고 해설을 붙여 1901년에 펴낸 것을 저본으로 하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과 명지대, LG연암문고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한국학 관련 희귀자료의 국역사업인 ‘그들이 본 우리’ 총서 제6권으로 나왔으며 로네 신부의 간행물에 빠져 있는 회고록의 일부 내용을 되살려 우리말로 옮겼다.

리델 주교는 조선과의 인연이 각별한 프랑스 선교사다. 프랑스 낭트에서 태어난 뒤 사제 서품을 받고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간 그는 1861년 조선에 잠입해 5년간 포교활동을 펼치다 1866년 3월 병인박해가 터지자 이를 피해 중국으로 피신했다. 같은 해 7월 톈진(天津)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조선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를 알렸고, 이어 9월 조선인 신도 3명과 함께 프랑스 함대의 강화도 침략(병인양요) 당시 길 안내를 맡기도 했다. 1878년 서울 포도청에 투옥됐다가 5개월 뒤 석방과 함께 중국으로 추방된 리델 주교는 조선에서 잡히고도 사형당하지 않은 최초의 선교사로도 유명하다. 이후 그는 중국 만주에 머물며 최초의 한국어 문법서인 ‘한어문전’과 ‘한불자전’을 저술했다.

책은 리델 주교가 1878년 1월28일 서울에서 체포, 투옥된 뒤 같은 해 6월10일 석방돼 만주에 당도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회고한 것이다.

특히 죄수들의 비밀 정보를 염탐하기 위해 걸인 행색을 하고 옥간에 눌러 있는 포도청 소속 비밀경찰이나 옥졸들의 구타로 시체가 돼 몰래 성문 밖에 버려지는 죄수의 실태, 포도청 감옥의 구조도 등 조선 감옥에 대한 다양하고 생생한 기록들을 남겨놓은 게 특징이다. 도둑들은 작은 밥사발에 아무런 간도 하지 않은 밥을 담아 아침저녁으로 먹는 게 전부지만, 채무로 투옥된 죄수들은 친지나 벗들과 서로 연락도 할 수 있고 밖에서 음식을 받아 먹었다. 대다수가 정부 관원이었던 이들은 심지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거나 굶주리고 있는 도둑 죄수들이 보는 앞에서 대향연을 벌이기도 했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새치기가 뭔지도 모르면서 … - 중앙일보 / 2009-01-10

대한민국은 도덕적인가
김광기 외 지음, 동아시아
295쪽, 1만4000원

 ‘대한민국은 도덕적인가’. 도발적인 질문이다. 하마터면 ‘대한민국은 도덕의 적(敵)인가’로 잘못 읽을 뻔 했다. 그만큼 사회에 대한 불신이 크다. 이 ‘불신의 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사회학자들이 나섰다. 이 책은 한국사회학회가 기획한 ‘사회학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첫 결실이다. 서문은 “사회학이 딱딱한 학문이 아닌 일상생활 속에 녹아 있는 실사구시의 학문임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970~80년대 격동의 시대, 사회학은 ‘운동권 학문’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회적 모순에 대한 모든 해답의 열쇠가 그 학문 안에 숨겨진 듯 여겨졌다. 하지만 그 열쇠로 강의실의 문을 연 것이 아니라 상아탑의 대문을 열었고, 사회학은 거리의 ‘민중’ 속에서 해답을 찾았다. ‘감격시대’가 지난 뒤 사회학은 거리에서도, 상아탑 안에서도 소외된 듯 보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회학 구하기’라는 미션을 받고 쟁쟁한 사회학자 9명이 나선 것이다.

놀 이공원 안내문도 훌륭한 사회학 텍스트가 된다. 장원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유원지의 ‘새치기’ 규정을 놓고 한국사회 불신의 원인을 논했다. 한국에서 ‘새치기’는 경범죄처벌법 1조 48항에 규정돼 있는 엄연한 범죄다. 하지만 조항이 애매하다. 48항 ‘새치기’ 조항은 ‘표를 사기 위해 여러 사람이 줄 서 있을 때 새치기를 하거나 질서를 어지럽힌 사람’에게 10만원 이하 벌금 등에 처한다고 할 뿐이다. 매표소에선 ‘새치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발견할 수 없다. 미국은 다르다. 뉴저지주의 한 물놀이 공원 입구에는 새치기를 한 자는 공원에서 즉시 추방된다는 경고와 함께 규정을 명기해 놓았다고 한다. ‘30분간 줄을 서 있다가 양해를 구한 뒤 화장실을 다녀와서 그 자리에 다시 서도 새치기’라는 것이다. 이 규정은 철저히 지켜진다. 규정에 대한 모호성이 한국사회의 한 특징이 되는 것이다. ‘룰’에 대한 자의적 해석은 사회적 불신을 양산한다. 놀이공원이라면 그 불신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대를 이어 전수된다.

책은 서문에서 ‘쉽고도 재미있는’ 사회학 출판물을 지향했다. 일단 글은 쉽다. 재미는 독자가 찾아야 할 몫이다.

배노필 기자

'고조선 신화에서 역사로' 발간 - 호남일보 / 2009-01-12

고조선 실체를 입증하기 위해 18년간 중국 대륙.동남아시아.일본 등을 40여 차례에 걸쳐 답사.발굴을 하며 동북공정의 역풍을 헤쳐나기고 있는 70대 노학자와 고조선역사문화재단 등의 노력이 12일 책으로 나왔다.

'고조선 신화에서 역사로'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이 책은 자천타천으로 제 2의 김정호(고산자)라고 불리는 지리학자 이형석 박사(72)와 문화유산의 비밀을 첨단과학으로 푸는 이종호 박사(60.KAIST초빙과학자)가 함께 저술해 눈길을 끌고 있다.

고조선 역사는 일제가 1925년 조직한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단군의 존재를 부인하며 단순한 신화로 평가절하하고 중국이 요하문명. 홍산 문화를 자신들의 문화로 편입시키기 위한 동북공정을 진행하며 부단히 폄훼되고 있다.

이같은 고조선 폄훼작업으로 인해 관련 각종 자료나 유적 등은 계속 왜곡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조선을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로 입증하기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부단히 발전해온 과학기술이 고고학과 발굴 등 고대사와 접목되면서 한국에서 발견된 수많은 청동기 등 관련 유물들의 연대가 크게 높아졌다.

또 2007년 고교 국사 교과서는 '삼국유사와 동국통감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내용으로 수정됐고 2008년에는 단군왕검 우표가 발행됐다.

'고조선 역사에서 신화로'는 우리민족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역사여정이 담긴 책이다.

이 책 1부는 우리 민족의 시원이 어디인가를 알 수 있도록 요하문명(홍산문화)에서 발굴된 수많은 유물과 유적지의 생생한 사진. 현장감 있는 내용이 실려 있다.

저자들은 우리 민족의 시조들이 살았던 요하문명에서 황하문명보다 훨씬 오래된 수준의 높은 문명이 발굴되자 중국의 것으로 둔갑시켜 중화 5000년이라고 부르짖는 등 역사왜곡을 질타하고 있다.
2부는 어느 지역이 고조선의 도읍지였는지 추정하고 내용이 기록돼 있고 왜 고조선이 한나라에 멸망했으며 어디로 쫓겨 갔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이형석 박사는 지리교육학자로 30여 차례 고조선 지역을 답사하며 지리와 역사의 만남을 통해 고조선 역사 찾기에 매달리는 등 상고사 연구에 선명한 족적을 남기고 현재는 병마와 싸우고 있다.

이종호 박사는 과학자로서 검증되기 어려운 고대사를 과학적 진실로 증명하기 위해 어려운 작업에 매달리면서 이 책을 저술했다.

책은 지리와 역사의 만남을 통해 선조들 살던 옛 터전의 유물과 유적을 통해 고조선의 실체를 눈으로 보고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우리책. 1만 5000원.


곽현주 기자

조선침략의 전초기지 재한 외국공관 - 매일경제 / 2009-01-13

`개항기의 재한 외국공관 연구` 출간

1880년대 세계열강과 근대적 조약을 체결하면서 조선은 전통적 조공체제에서 벗어나 근대적 외교채널을 가동하게 된다.
동북아역사재단이 13일 출간한 `개항기의 재한 외국공관 연구`(동북아연구총서 38)는 이 같은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일본, 중국, 미국, 독일, 영국 등 외국공관의 실체를 조명한 책이다. 결론은 이들 공관이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조선침략의 전초기지였다는 것이다.

하원호 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 연구교수를 비롯한 6명의 공저자들은 주한 외국공관의 인적 구성, 외교관의 활동 등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조선에 대한 열강의 정책 변화 양상을 추적한다.

하 교수는 `개항기 재조선 일본공관 연구`를 통해 일본 영사관의 조선에 대한 각종 조사를 분석하면서 "일본의 조사는 단순히 경제적 영역에 그치지 않았다. 정치적 사건이나 그에 따른 민정일반, 각 지역의 지리, 인구, 각종 관습조사 등 사회 전 부분에 걸쳐 조사가 진행됐다"고 주장한다.

또 "일본 영사관은 전통적 관계에 의한 조선의 경제정책, 즉 방곡령에 대해서도 불평등한 조약을 근거로 조선 정부에 격렬하게 항의하는 등 일본인의 조선에 대한 경제적 침탈에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해 나갔다"며 "이처럼 개항기 재조선 일본공관은 불평등조약을 바탕으로 외압을 가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손정숙 이화여대 강사는 미국 공사관의 외교전략을 분석하면서 "본국의 친일적인 외교노선을 반대하고 한국의 독립 유지를 주장한 앨런 공사의 입장은 본국의 외교정책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국 정부의 외교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현지 외교관의 외교전략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밖에 나혜심 성균관대 강사는 독일공관 연구를 통해 "독일 영사들은 자국의 경제적인 이익에 기여할 수 있는 각종 이권과 자산의 확보 및 유지를 위해 활동했다"고 말하고, 이헌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도 "영국공관은 정보수집과 보고를 통해 영국 정부의 대한 정책의 기초적 정보를 만드는 첨병이었다"고 강조한다.

320쪽. 1만4천원.

buff27@yna.co.kr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한국의 독특한 ‘종족 민족주의’ - 한겨레 / 2009-01-21

한국의 독특한 ‘종족 민족주의’
신기욱 교수 ‘…계보와 정치’ 출간
한국사회 핵심 조직원리 등 진단

한국 사회의 핵심 조직원리, 한국 사회 역동성의 배후는 무엇인가?

1980년대 초반 미국으로 유학을 가 그곳에 정착한 사회학자 신기욱 스탠퍼드대 교수가 25년 동안 집요하게 매달려 온 화두다.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부터였고, 처음엔 자신이 한국을 떠날 때 이 땅에 폭발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반미운동 해석에 집중했다. 그것은 곧 한국 민족주의 연구로 확대됐다. 반미운동이 한민족 정체성 문제와 원초적으로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06년 스탠퍼드대 출판부에서 낸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이진준 옮김, 창비 펴냄)에서 신 교수는 한국 사회의 주된 조직원리를 “종족민족주의”로 규정한다. 혈통과 인종, 즉 생물학적 특징을 강조하는 종족민족주의의 형성과 발전과정, 그리고 공과를 모르고서는 20세기 한국 사회와 정치의 변화를 읽어낼 수 없을 뿐 아니라 21세기 전망 역시 어려울 것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한국 민족주의…>는 이 문제를 역사사회학적이고 정치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책이다.

한스 콘 이래 도널드 호로비츠에 이르기까지, 민족주의 연구자들은 종족민족주의를 위험하고,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보는 강한 전통이 있다. 신 교수는 유럽적 경험에 바탕을 둔 그런 본질주의 시각이 한국 종족민족주의 해명에 만족스런 답을 내놓을 수 없다고 본다. 유럽과 아프리카는 근대에 와서야 지금의 지리·정치적 지도가 형성됐고, 민족주의는 다양한 종족들을 민족이라는 응집력 있는 정치적 공동체로 통합하기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 민족이란 개념 자체는 서구 근대의 산물이지만 한국은 오랜 영토적 안정 속에 중앙집권적 관료국가가 지속돼 왔고, 근대 이후 한국 민족주의는 유럽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민족주의가 한반도에서 비민족적이고 초민족적인 형태의 다른 정체성들을 물리치고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한 것은 필연도 운명도 아니었다. 한반도 종족민족주의의 출현과 지배는 “역사적으로 각인되고, 구조적으로 우연한 상황 속에서, 한국의 안과 밖에서 벌어진 논쟁(경쟁)적인 정치가 낳은 산물”이다. 이 역사적 각인과 우연과 논쟁을 관통하는 지배적 사건은 근대와 함께 찾아온 외세의 위협, 곧 제국주의 침략과 한민족의 생존을 위한 저항이다. 종족민족주의는 저항민족주의 담론으로 탄생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파탄과 함께 미국 일극체제가 무너지고 중국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21세기 동아시아 정세 급변 속에서 그 상황은 연장되고 있다. 따라서 종족적 민족정체성, 곧 종족민족주의가 “예견할 수 있는 미래에 사라지거나 약화될 것 같지 않다”는 게 신 교수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 유효성을 긍정하면서 결함을 보완하도록 권한다. 종족민족주의는 반식민 저항과 근대화의 동력이었고 통일운동의 이념이었다. 세계화(지구화)도 민족주의 목표를 위해 전유(專有)돼 양자는 상충하지 않고 오히려 친숙했다. 이것이 신 교수가 평가하는 종족민족주의의 ‘보상’이라면, 그 ‘대가’도 있다. 정치·문화·사회적으로 전체주의 세력화해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정체성들을 주변으로 밀어냄으로써 자유주의·보수주의·급진주의를 포함한 근대적인 사상과 철학의 빈곤을 초래했고, 독재정부의 시민권과 자유 억압에 동원됐으며, 종족민족주의를 체제 유지를 위해 전유한 남북간의 갈등과 긴장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양날의 칼인 종족민족주의의 ‘대가’와 ‘저주’를 걷어내기 위해선 시민적 민족정체성을 형성하고 민주적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신 교수는 말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lundi 26 janvier 2009

韓日 양국은 왜 서로 부정적으로 바라볼까 - Books Chosun / 2009-01-01

韓日 양국은 왜 서로 부정적으로 바라볼까
’조선인의 일본관’ㆍ’일본인의 조선관’ 출간
연합뉴스

한국인에게는 임진왜란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에 대해 뿌리깊은 피해의식과 적대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시각도 만만치 않게 부정적이다. 그런 부정적인 상호 인식 속에 오늘날 독도문제와 교과서 문제, 위안부 문제 등으로 삐걱거리는 한ㆍ일 관계가 자리하는 것이다.

’조선인의 일본관’과 ’일본인의 조선관’(논형 펴냄)은 재일교포 사학자인 금병동 씨가 이런 두 나라의 부정적인 상호인식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양측의 시각에서 찾아가는 책이다.

일 본인의 조선에 대한 침략사상의 출발점은 8세기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記)에 기록된 ’진구황후 전설’이다. 진구황후는 주아이(仲哀) 천황의 부인으로 천황은 신라.백제.고구려로 구성된 삼한을 치라는 신탁의 명을 믿지 않아 신의 노여움을 사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이에 진구는 쓰시마를 거쳐 신라로 건너갔고 이때 바다에 있는 크고 작은 고기가 모두 기뻐했으며 군선을 등에 지고 나르고 순풍도 일어나 파도가 신라국의 절반에 이를 지경이었다. 이에 크게 두려워한 신라왕이 백기를 들어 항복하고 많은 금.은.비단 등을 보냈으며 진구는 신라를 우치쓰미야케(內宮家)로 삼아 지배했다는 것이 진구황후 전설이다.

진구황후 전설은 ’조선이 일본의 속국이었다’라고 하는 전통적 조선관을 형성시켰으며 사상적으로는 그 후 일본인의 한국관에 토대를 제공한다. 이렇게 시작된 조선에 대한 침략사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과 메이지 시대 초기의 정한론, 그리고 이후 조선 식민지화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일본인의 조선관’은 이외에도 18세기 말 이래 관료와 정치가, 학자, 문인, 언론인, 군인 등 다양한 분야의 일본 지식인 57명이 조선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통해 일본이 한국에 가진 민족적 편견과 감정적인 모멸감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따라나간다.

1999년 일본에서 출판된 ’일본의 조선침략사상’의 내용에 2004년 4월-2005년 12월까지 ’조선신보’에 연재한 ’인물로 보는 일본의 조선관’의 내용을 더한 책이다.

함께 출간된 ’조선인의 일본관’은 조선왕조 시대 일본에 파견된 사신들과 근대 이후 조선정부의 개화 정책 시행에 따라 일본에 파견된 수신사 등의 일본 견문기와 일본강점기 한국인들이 식민통치에 어떻게 저항해 나갔는지를 정리했다.

조선시대 예학 집대성한 한국예학총서 발간 - 매일경제 / 2009-01-04

경성대 한국학연구소, 가례.의례 60권 출간

경성대 한국학연구소가 조선시대 가례와 의례 등 방대한 예학자료를 한데 모아 정리한 `한국예학총서'를 출간했다. 경성대 한국학연구소는 조선조 관혼상제의 가정의례와 향례, 학례, 방례 등 4대 예학 관련서 300여종을 정리해 총 200권 분량의 한국예학총서를 발간하기로 하고 최근 가례와 의례를 내용으로 한 1차분 60권을 출간했다고 5일 밝혔다.
경성대 한국학연구소는 지난 2002년부터 전국의 주요 도서관에 소장된 장서 목록을 뒤지는 한편 개별적으로 자료를 수집해 예학 관련 목록을 만든 다음, 시기별로 주요 예학서를 정리해 해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예학총서를 제작했다.

조선시대의 예학은 국가의 중요한 행사는 물론 각 고을이나 집안의 특별한 의식을 위해서도 별도로 의절을 만들어 낼 만큼 당시로서는 중요하고 방대한 학문이었지만 최근 100여년간 전근대적인 학문으로 취급받으면서 점차 관심에서 멀어져왔다.

경성대는 전체 예학 관련 저술의 종류와 분량이 방대한 점을 감안해 우선 가례와 의례에 관한 예학서 60권을 정리해 출간했다. 나머지 향례와 학례, 방례 등을 담은 140권은 올 상반기 중 출간 예정으로 여기에는 18세기 간행물인 `춘관통고'와 `전례류집', `의례집전', `사의' 등이 실릴 예정이다.

경성대 한국학연구소 강대민 소장은 "이번 1차 간행분 자료해제에만 16명의 학자가 참여할 만큼 힘들고 어렵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방대한 조선시대 예학을 한자리에 모아 집대성했다는 점에 한국예학총서 발간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joseph@yna.co.kr

(부산=연합뉴스) 김상현 기자

조선의 권력, 책에서 나왔다 - 동아일보 / 2008-12-12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주영하 외 지음/240쪽·1만3000원·휴머니스트

◇조선출판주식회사/이재정 지음/332쪽·1만7000원·안티쿠스

《조선시대는 책의 시대였다. 책은 유일한 정보 매체이자 권력이었기 때문에 어떤 책을 왜 만들어 어떤 식으로 유통시키는지는 당대의 역사적 맥락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조선시대의 책 문화사에 접근한 책이 나란히 나왔다.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는 삼강행실도의 편찬 배경과 유통 과정을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조선출판주식회사’는 조선 왕들이 책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조선의 통치체제를 유지하는 데 출판이 어떻게 활용됐는지 살폈다.》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는 삼강행실도가 어떻게 출판돼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 어떻게 소비돼 조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추적한다. 특히 이 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속의 민속학자, 서지학자, 역사학자, 미술사학자, 고전소설 연구가가 함께 집필해 학제 간 연구의 모범을 보여준다.

왜 하필 삼강행실도일까. 효자 열녀 충신 등 조선시대 유교이념을 대표하는 윤리서로 500년 동안 가장 많이 출판된 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삼강행실도는 세종대에 간행됐다. 당시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 세종이 백성을 교화할 도덕 교과서를 만들라고 한 것이 표면적 이유다.

이 책은 이면의 배경을 드러낸다. 조선 초기는 부계 사회가 아니었다. 성인 남자가 처가살이를 했고 외가 조상의 제사를 모시며 처가와 외가에서 재산을 물려받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도 왕실의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상태였다. 신하 중 상당수가 고려 출신이었고 고려 왕조의 이념과 사상을 따르는 이들도 많았다.

새로운 통치 이념인 유교 문화를 확립하는 것이 조선 왕실의 생존을 위한 핵심 과제였던 것이다.

성종 12년인 1481년 삼강행실도는 크게 변화한다. 전국적 독자층의 확보를 위해 한문을 한글로 풀어쓴 삼강행실도 언해본과 삼강행실도의 330개 에피소드를 105개로 줄여 간략히 만든 선정(選定)본이 출현했다.

‘조선출판주식회사’에서 소개한 조선 왕들의 모습은 출판사의 편집장을 연상시킨다.

1781년 7월 9일 아침 정조는 전·현직 대신을 모두 소집했다. 영조의 ‘보감(寶鑑·선대 왕의 훌륭한 업적을 모은 책)’ 편찬을 의논하기 위한 자리였다. 정조는 이 자리에서 보감 편찬을 위한 자료 수집 방법, 편찬 담당자를 정했으며 보감 인쇄까지 직접 관여했다.

1434년 세종은 ‘자치통감’을 편찬하는 일에 몰두했는데, 책을 만드는 동안 매일 밤늦게까지 원고를 직접 교정 봤다. 영조는 재위 동안 무려 9900권의 책을 썼다.

중종은 1542년 민간의 책을 모으는 일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책을 바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하나뿐인 책은 베껴 쓴 뒤 돌려주라고 했다. 선조도 민간이 소장한 책을 찾아내는 데 전력을 다했다.

중국에 간 조선 사신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책을 구해오는 일이었다. 어찌나 열성이었던지 청나라 관료였던 강소서라는 사람이 “조선 사람들은 책을 제일 좋아한다. 무릇 사신이 올 때는 50∼60명이 시장에 나와서 … 비싼 값을 아끼지 않고 사서 돌아간다. 그래서 조선에 오히려 진귀한 책들이 소장돼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왕이 책의 활자까지 정할 정도였는데 여기에는 정치적 이유가 숨어 있었다. 세조는 자신이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할 때 안평대군이 이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안평대군의 글씨로 만든 활자체를 없앴다.

책에 대한 왕실의 지대한 관심은 책의 간행과 유통을 국가가 통제하는 데까지 나아갔는데 이 때문에 책의 활발한 유통이 막히는 한계도 나타났다.

대표적 사례가 책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서점의 설치를 금지한 것이다. 저자는 “국가 차원의 책의 보급은 결국 유교 통치를 위한 것이어서 백성의 즐거움에는 관심이 없었고 고위 관료들은 책을 소유하는 특권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책으로 백성을 다스리려 했지만 역설적으로 책이 백성에게 보급되는 것을 막았던 셈이다. 저자는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관으로 조선시대 금속활자를 연구해 왔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mercredi 17 décembre 2008

‘아파트 공화국’의 미스테리 [강준만의 세상읽기] / 한겨레 21 2005년12월21일 제590호

‘아파트 공화국’의 미스테리

[강준만의 세상읽기]

외국인 학자의 연구주제까지 된 아파트를 향한 한국인들의 열광
“당신은 몇평에 사나” 처절한 구별짓기의 현장, 보이지 않는 카스트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고현정, 김남주, 김지호, 김현주, 김희애, 송혜교, 신애라, 이영애, 채시라, 최지우, 한가인(가나다 순) 등 한국을 대표할 만한 이 빼어난 미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다 아파트 광고 모델이다. 대다수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꿈이다. 아파트라고 해서 다 같은 아파트가 아니기 때문에 아파트를 향한 꿈은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계속 나래를 펴고, 그 꿈을 인도하기 위해 한국의 미녀들이 총출동한 것이다.

압구정동, 여기가 슬럼가냐?

아파트는 ‘코리언 드림’이다. 그건 한국인에게 진지하고 심각하고 비장한 드림이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충격을 받는 외국인들도 있다. 네덜란드인으로 단국대 교수인 헨니 사브나이에는 “한국인이 아파트에 살고 싶어하고 그걸 진보라고 여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특이하다”며 “세계 어디에도 고층 아파트 건물들로 이루어진 마을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를 본 어느 독일인 교수는 “여기가 서울의 슬럼가냐”고 물어 한국인 안내자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프랑스의 한 도시계획가는 서울 반포의 5천분의 1 축적 지번 약도를 보고선 “한강변의 군사기지 규모는 정말 대단하군”이라고 말했다나.

대단한 건 통계로도 입증된다. 한국의 아파트 가구율(전국 47.3%, 서울 50.3%, 강남구 75.8%)은 세계 최고다. 70년대부터 한 세대 이상 지속돼온 아파트값 폭등 속도도 세계 최고일 것이다. 그런 ‘세계 최고’라는 위상에 비추어보면, 1994년 서울 아파트 단지의 거대함에 충격을 받은 프랑스 마른라발레대 지리학과 교수 발레리 줄레조가 한국의 아파트를 박사논문의 주제로 삼기로 마음먹은 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아야 했다. 현장답사를 하면서 한국인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한국인들은 왜 아파트가 연구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살려면 주택을 수없이 건설해야만 한다는 사실과, 그 많은 아파트를 왜 지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제기할 필요도 없다는 점을 이해 못하는 순진파로 취급되어 자주 낙심하기도, 마음을 상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협소한 영토에 인구밀도가 높은 네덜란드나 벨기에에서는 도시 집중화가 대규모 주택 건설을 초래하지 않았으며, 공간이 넉넉한 프랑스에 오히려 대규모 주택 건설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이 된 것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파트를 향한 한국인들의 열광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라는 연구 주제를 물고 늘어져 지난해 <한국의 아파트 연구>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인의 ‘영토 부족에 대한 강박관념’과 더불어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현대적인 삶을 상징했으며, 고도성장의 포드주의적 양산 체제에 더 들어맞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파트는 한국적이다. 한국과 한국인의 특성을 상징하거나 대표할 수 있는 사물을 하나 들라면 그건 단연 아파트일 것이다. 아파트는 처음에 현대성의 상징으로 도입됐다. 1958년 광복 이후 최초로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아파트가 세워졌을 때 준공식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이 역설했던 것도 바로 ‘현대성’이었다. 1964년 마포아파트단지 완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도 아파트를 현대성의 상징으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현대성’만으론 부족했다. 1960년대 말까지 아파트에 대한 저항은 완강했다. 정부는 마포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까지 제작하게 하는 등 아파트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마당이 없다거나 공동생활의 불편함이 크다는 것 등이 아파트를 꺼리게 만들었다. 양변기마저 기피 사유가 되었다. 아직도 대다수 국민이 화장실 휴지로 신문지를 쓰던 시절 마포아파트의 양변기는 오히려 골칫덩어리였고,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신문지로 막힌 양변기를 뚫느라 바빴다.

아파트에 날개를 달아준 건 ‘돈’이었다. 투기 바람이었다. 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정부의 ‘강남 개발’이었다. 정부는 정부대로 정치자금 조달 목적을 위해 강남 개발에 열을 올렸고, 19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버는 이른바 ‘말죽거리 신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네트워크를 깔기에 가장 적합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말 그대로 군사작전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 사망자가 77명이나 나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아파트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아파트는 한국의 군사주의적 초고속 압축성장을 웅변했다. 예컨대, 잠실의 초창기 4개 단지의 건설을 지배한 구호는 ‘주택건설 180일 작전’이었으며, 이 작전은 성공적으로 완수됐다.

한국인들은 군사주의를 혐오하지만, 한국을 세계적인 정보통신 강국으로 떠오르게 만든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파트 대단지가 제공해주는 군사주의적 효율성임을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중앙집중화의 터전 위에 선 아파트 공화국이야말로 네트워크를 깔기에 가장 적합한 체제가 아닌가. 반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교외주거지역의 특성상 인구밀집이 쉽지 않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어 인터넷 보급망에서 한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아파트는 한국인 코드의 핵심이다.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 할 단일성과 밀집성을 아파트가 상징하는 동시에 실제로 구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또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구별짓기’가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남들과 구별되고자 하는 인간의 본원적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소재가 빈약한 아파트 공화국에선 아파트가 가장 중요한 구별짓기 양식이 된다.

별로 믿기지 않겠지만, 아파트 공화국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예견됐던 것이다. 아파트 구별짓기의 제1원칙이라 할 지리적 위치의 중요성은 수백 년 전부터 ‘민간신앙’의 수준에서 인식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산 정약용이 죽기 전 자녀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가지 말고 버텨야 하며,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고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고 신신당부한 동시에 경고했던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건재하지 않은가 말이다.

서울 모 대학에 다니는 네팔인 유학생 검비르 만 쉐레스터는 한국인들은 인도와 네팔의 카스트 제도에 대해 놀라면서 비판하지만 자신은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카스트’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신입생 환영회 때의 일이다. 선배들은 처음 본 신입생에게 먼저 ‘집이 어디세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방에 산다고 대답했을 때와 강남에 산다고 대답했을 때 선배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방에 사는 신입생에게는 더 이상 질문이 없었던 반면 강남 출신 신입생에게는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관심을 가졌다.”

서울·지방, 강남·강북 등의 지리적 위치 다음으로 중요한 구별짓기 소재는 아파트 평수다. 일부 지역에선 아파트 평수에 따라 어린아이의 친구들이 구분된다는 건 상식이다. 심지어 한국 최고급 아파트인 타워팰리스에도 아픔이 있다. 평수에 따른 차별 때문이라고 한다. 그 안에도 젊은 독신자와 노인 부부 등을 위한 30평대 이하의 소형 아파트들이 있다. “‘30평 애들하곤 놀지 마’- ‘부의 상징’ 타워팰리스 빈곤층(?)의 비애”라는 제목의 어느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런 이야기다.

고밀도형 민주주의와 인터넷

124평 펜트하우스에 사는 최모군(13)은 “어느날 60평대에 사는 다른 동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는데, 부모님께서 그다지 달가워하는 눈치가 아니어서 그 뒤론 안 데려온다”고 털어놨다. 최군은 “이곳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대치동 D중학교에서도 아파트 평수와 부모의 직업에 따라 친구들이 구분된다”고 말했다. 소형 아파트들이 주로 D·E동에 몰려 있다 보니 “난 이곳(D·E동)에 살지 않는다”며 결백(?)을 증명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D동 20평대 오피스텔에 사는 이아무개(32·여)씨는 “가끔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사람이 묻지도 않았는데 ‘난 여기에 놀러 온 것뿐’이라고 해명하기도 한다”며 “일부 주민들은 자신이 소형 아파트에 산다고 오해받는 것을 불쾌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별로 믿고 싶지 않겠지만, 그런 처절한 구별짓기 욕구가 한국인의 삶에 대한 전투성을 배양시켜 한국의 대외경쟁력을 높여주는 데에 기여했는지도 모르겠다. 20평대에 사는 사람이나 120평대에 사는 사람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없고 구별짓기의 효과도 없다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할 이유도 약화되지 않을까? 소설가 이외수는 아파트를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으로 정의했지만, 아파트는 인간을 보관만 해주는 곳이 아니라 욕망이 타오르게끔 관리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도 그걸 아파트 체제의 장점이라고 감히 말하진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묘한 나라다. 자본주의에 비판적 자세를 취하는 것과 한국이 ‘경제대국’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함께 손을 잡고 같이 간다. 논리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치의 평화 공존이야말로 한국의 저력(?)이다. 개혁·진보의 이름으로 국가주의를 당당하게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건 아파트 공화국이 자랑하는 고밀도에서 비롯된 생존 본능은 아닐까? 한국의 민주주의도 고밀도형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고밀도 민주주의는 한국 특유의 온라인 민주주의를 낳았으며, 오프라인에서도 ‘월드컵 열기’나 각종 ‘촛불 시위’에서 보듯 일시에 수많은 군중을 동원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늘 ‘열풍’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 가능성이 높다는 걸 시사한다.

그건 아파트 거주 구조의 전염력이나 압박력이 높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2년 6월 월드컵 열풍 때에 많은 아파트에 태극기가 내걸린 것은 아파트 관리소와 통반장이 합심해 “태극기를 걸고 주민이 하나됨을 보여주자”며 태극기를 걸지 않은 집을 찾아가 태극기를 걸도록 권유했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이기적 시위를 대량생산하는 공장이기도 하다. 아파트는 시위 체험과 방법론을 가르쳐주는 대학이다. 일부 아파트의 반상회가 내부 단합을 통해 집값을 올려놓는 묘기를 선보일 수 있는 것도 고밀도 주거 구조의 파괴력(?)을 잘 말해준다 하겠다.

고밀도 주거구조의 축복이라 할 인터넷은 다시 고밀도 행태를 강화한다. 더 나은 칸막이 속으로 들어가려는 ‘위계의 게임’은 인터넷 시대에 신속한 정보 교환으로 인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인터넷 사이트의 상담 코너에선 ‘투자’ 상담뿐만 아니라 똑같은 강남이라도 어느 학교가 더 좋다는 정보까지 왕성하게 교환되고 있다.

고밀도 민주주의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따라 하기’를 낳기 마련이고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공연한 불안감을 갖게 만든다. 부동산값 폭등은 경제적인 현상인 동시에 심리적인 현상이다. 사람들이 우우 몰려다니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걸 이용해 대박을 터뜨리는 산업이 엄청난 고수익을 올리기에 유리했다는 것이다. 일부 중산층은 물론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까지 그 산업의 일원으로 참여한 ‘대박 신드롬’은 빈부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윤수일의 아파트와 당신의 아파트

한국의 1673만 가구 가운데 절반인 841만 가구는 집이 없다. 한국 사회에 대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빈부 양극화의 진원지는 바로 아파트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은 마비됐다. 이화여대 건축과 교수 임석재의 <건축, 우리의 자화상>에 나오는 아파트 광고 비평은 처음엔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다가 종국엔 독자를 슬프게 만들고야 만다. 우리의 아파트 중독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폭로하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강홍구는 “모든 아파트에는 분노와 공포가 창문처럼 매달려 있다”고 했다. 아파트는 아파트의 주인이 아닌 노예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한국적 삶이 전쟁이라면, 그 전쟁은 우선적으로 아파트의 노예가 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이 어떤 아파트를 점령하는 순간 당신은 더 나은 아파트를 또 점령하기 위한 임전 태세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조망권과도 싸워야 하고 발코니와도 싸워야 한다. 윤수일의 ‘아파트’는 아무도 없기에 쓸쓸하다지만, 아직 아파트를 단 한 번도 점령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아파트는 처절하거나 경건하기만 하다.

mercredi 12 novembre 2008

Exodus to North Korea: Shadows from Japan's Cold War/ Haeng-Ja Sachiko Chungal

Exodus to North Korea: Shadows from Japan's Cold War. By Tessa Morris-Suzuki. Lanham, Md.: Rowman & Littlefield / Haeng-Ja Sachiko Chungal
a1 Hamilton College/University of Tokyo, 2007. xi, 291 pp.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2008), 67 : 1480-1482 Cambridge University Press

사회 변동과 한국 가족법, 나남 / 김성숙

가족법을 중점적으로 연구해 온 김성숙 (사진) 숭실대 법과대 교수가 지난 26년 동안 쓴 논문을 엮은 ‘사회 변동과 한국 가족법’(나남)을 최근 펴냈다.

김 교수는 한국가족법학회 회장,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 등을 지낸 가족법 전문가다. 각각의 논문에서 그는 혼인과 약혼에 대한 법규, 재산분할제도 등 가족법 전반을 주제별로 다루고 다양한 외국 사례를 들어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가 논문에서 지적한 문제점을 보면 혼인, 이혼, 상속 등에 대한 논문 발표 당시의 사회적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이후 문제점이 개정된 법규에 대해선 각 장의 ‘후기’에 개정 내용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가족법은 시대 변화에 따라 개정돼 왔지만 아직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수용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서 “특히 독신가족, 한부모가족, 미혼모가족 등 새로운 개념의 가족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법률혼 외의 동거관계를 혼인으로 인정할 것인지의 문제, 인공수정자의 친생 추정을 비롯해 생명공학의 발달로 야기되는 여러 가지 법률적 문제 등 가족법에서 검토해야 할 새로운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lundi 10 novembre 2008

‘손에 동전 한 푼 없다’ 징징거린 조선 양반들 - 중앙일보 / 2008-11-8

하영휘 선생의『양반의 사생활』(푸른역사, 2008)은 1800년 서울에서 태어나 충청도 남포현 삼계리(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충남 보령시 미산면)에서 몰한 조병덕(趙秉悳)의 삶을 재구성한 일종의 전기다.

조병덕은 조선시대를 쥐고 흔든 노론(老論) 화족 가운데 하나였던 양주(楊洲) 조(趙)씨, 괴산(槐山)공파의 일원이었다. 그는 같은 집안의 아저씨뻘로 철종(哲宗)과 고종(高宗)대에 삼정승을 두루 거치며 노론 종주로 활약했던 조두순(趙斗淳)과는 대조적으로 과거나 벼슬을 일절 하지 않았지만, 살아생전 ‘산림(山林) 어른’으로 존경받았다.

조선 후기에 살았던 한 양반의 전기를 구성하기 위해 저자는 약간 특별난 방법을 이용했다. 조병덕은 28년간 자신의 장남에게 무려 1700여 통의 길고 짧은 편지를 썼고, 저자는 자신이 재직하고 있던 ‘아단문고’에 상자째 쌓여 있던 고문서 더미 속에서 이 편지 뭉치들을 발견했다. 어찌 보면 저자가 특별난 방법을 이용하고자 했던 게 아니라 누구에게도 공개되기를 원치 않았던 한 양반의 사신(私信)이 150여 년 세월을 기다려 ‘임자’를 찾았던 거라고나 할까.

“고문서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건 대학 시절부터였습니다. 1980년대엔 마르크스주의 영향이 강해서 늘 역사 발전 법칙 속에서 한국 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논쟁하곤 했죠. 그런데 그런 도식으로는 도저히 조선시대를 모르겠더군요. 다행히 졸업 후 89년부터 몸담게 된 직장에서 조선시대의 고서와 고문서를 원 없이 읽게 되었습니다.
요즘 나오는 대중 역사서나 영화·드라마 등이 『조선왕조실록』에서 많은 자료를 취재하고 있지만, 그건 원래 국가 기록이라서 관점 자체가 정치를 중심으로 삼고 있고, 사적인 내용도 말소되어 있습니다. 이번 책에서 시도한 일상사는 사적 자료·일기·편지와 같은 고문서가 발굴되고 읽을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일상사적인 방법을 통해 역사의 사실과 진실에 접근해 보고 싶었다는 저자에게 1700여 통이나 되는 조병덕의 사신은 그야말로 축복에 가까웠다. 앞서 언급됐던 『조선왕조실록』은 물론이고 문집의 편집 과정에서 또 한번 걸러진 대부분의 정통적(orthodox) 자료에서는 유교 도덕과 명분으로 도배된 양반의 공적 영역만 전해진다.

반면 조병덕의 편지는 조선시대 양반이 남에게 보이는 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여겼던 몇 가지 사항 가운데 특히 금전거래에 관한 기록이 상당량을 차지한다. 저자가 편지의 “솔직함에 빠졌다”고 토로하는 것과 반대로, 편지의 주인이 “이 편지는 반드시 즉시 태워야 한다”는 조바심을 말미마다 적은 까닭은 그 때문이다.

조병덕은 생계를 위해 책을 판 일이 적지 않았고, 오늘날의 택시비인 가마비를 아끼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어쩌다 손님이 갑작스레 닥치면 자신의 밥그릇에 행주를 깨끗이 빨아서 넣고 그 위에 쌀밥을 덮어야 할 정도였으니,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유력한 친척들에게 구걸을 하는 일은 당연했다.

그는 첫째 아내가 죽자 장인에게 “죽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것이 산 사람 고생보다는 유쾌할 것 같습니다”라고 썼으며, 둘째 부인이 죽자 묏자리를 구하지 못해 남의 산에 투장까지 했다. 조병덕이 편지에서 자주 사용한 관용구는 “손에 동전 한 푼 없어 꼼짝달싹 못한다”란 말이었다. 양반의 치부는 그뿐이 아니었다.

그의 큰며느리는 새로 맞은 시어머니를 쫓아내 부부가 살 집을 새로 지어야 할 정도였으니, 가장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거나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편지에 “다만 높이 날아 멀리 달아나 집에 있고 싶지 않을 뿐이다”고 그는 썼다.

“조병덕의 삶은 중앙지향적이었던 기호지방 양반의 일반적인 사례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영남지방은 중앙 진출이 좌절되면서 지역 내의 양반이 여러모로 결속해 유교적 도덕에 의한 가부장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기호지방의 양반들은 삼대 동안 과거에 붙지 못하면 몰락을 면치 못했습니다.

거기다가 조병덕이 살았던 시절은 장동 김씨가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 국면에 들어서면서 권력을 공유하던 노론 집단의 동류의식이 무너지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양반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유교적 가부장 사회는 조선시대를 이상적인 유교사회로 포장하려는 경향의 산물이고, 선비문화 역시 후대의 투영물입니다. 그들은 이슬을 먹는 신선이 아니었습니다.”

조병덕은 지방의 서원 세력을 향반으로 여기면서 거리를 둘 만큼 중앙지향적이었지만, 임금이 두어 차례 벼슬을 주었음에도 고향에서 나가지 않았다. 벼슬 받고 서울에 올라가 봐야 권한을 갖거나 인정을 받기 어려웠고, 굶어 죽더라도 산림으로 있어야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재 미나게도 조병덕은 스스로 “정주(程朱) 이후로 의리가 밝혀져 남김이 없기 때문에 후학은 단지 받들어 믿고 토론하여 밝힐 뿐이다”고 말한 것처럼 변변한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저자는 “저술을 추구하지 않는 유학의 한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고 귀띔한다.

“1700 여 통의 사신은 양반들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생활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사회적·경제적 특성을 엿보게 해줍니다. 조선 사회는 지연·학연·인척·과거 벼슬을 통해 많은 관계를 만들려고 하고 유사시엔 그 관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왕래망(往來網) 사회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전통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고스란히 남아 있죠. 또 조병덕은 가렴주구를 비난하면서도 벼슬에 나간 자제배들로부터 명목전을 거두는 것을 당연시했습니다.

그건 용인된 뇌물이기도 했고, 상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혜와 복종으로 유지되는 ‘도덕 경제’의 일면이기도 했습니다. 이 또한 오늘의 한국 경제에서 흔히 찾아지는 특성입니다.”

조 병덕은 평생 ‘밭 가는 유학자’를 자처하며 ‘조경모독(朝耕暮讀)’과 ‘비기력불식(非其力不食)’을 실천하고자 했으나, 문자 그대로 한 번도 밭을 가는 일을 실천하거나 자신의 힘으로 먹지 못했다. 그를 먹여살린 것은 임지에 나간 자제나 인척들에게서 거둔 명목전이었고, 그 명목전은 백성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양반들을 굳이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쌀 직불금을 허위 수령한 요즘의 불한당이라 할 것이다. 사진 신인섭 기자


‘장 작가’란 줄임말로 불리는 장정일씨는 시인·소설가·희곡작가·책 평론가입니다.


장정일<9571@joongang.co.kr>

민족주의는 한국사회의 문제아인가 - 프레시안뉴스 / 2008-10-30

민족주의는 한국사회의 문제아인가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63>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① 2008-10-31 오후 3:11:13 강철구/이화여대 교수

민족주의로부터의 탈주

민 족주의는 10여년전만해도 한국인들의 마음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대의(大義)였다. 민족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잘 모르기는 해도 누구나 그것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당시만 해도 민족이나 민족주의라는 말에는 약간 성스러운 분위기조차 있었으므로 대놓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민족주의를 비판 내지 공격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지식인들 가운데에는 노골적으로 민족주의에 반대하고 민족주의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아가 '민족주의는 반역'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또 이에 영향을 받은 많은 일반 청년남녀들도 민족주의가 불편하다고 말한다. 민족주의가 전쟁과 종족학살, 외국인 차별을 가져오는 비윤리적인 이념인 만치 어쩐지 받아들이기에 거북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족주의는 오늘날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이데올로기로, 낡은 유물 취급이나 받으며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너도 나도 민족주의 비판 대열에 서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조급증을 보인다. 약간이라도 민족주의 냄새가 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시비의 대상이 된다. 2002년 월드컵 때 젊은이들이 붉은 악마 옷을 입고 일사불란한 응원을 벌이자 일부 성질 급한 사람들이 이를 파시즘으로 몰아 붙였을 정도이다. 당시의 응원이 유별나기는 했으나 그래도 그렇지 파시즘이라니? 독재자도 없고 선전, 선동도 없는 파시즘이라는 것이 있단 말은 금시초문이다

황우석 신드롬도 비판의 대상이다. '경제지상주의, 국가주의 등 민족주의의 모든 부정적 요소들이 결합하여 나타난 그것은 민족주의의 맹목성과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불치병 환자들의 가족이 황우석씨의 주된 지지자라고 들었는데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민족주의와 그렇게 큰 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또 작년에는 지금까지 그 이름에 민족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온 듯한 민족문학작가회의라는 작가 단체가 그 이름에서 민족을 쏙 빼버렸다. '민족'이 이제 철지난 단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단체도 유행을 타는 모양이다. 가위 민족이나 민족주의로부터의 탈주라고 할만한 일이다.

일부 비판적인 역사학자들은 국사 서술에까지 칼을 들이대고 있다. 지금까지의 우리 국사 책들이 너무 민족주의적으로 서술되었으므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국사를 해체하라는 것이다.

언 론들도 이런 움직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파신문이고 좌파신문이고 마찬가지이다. 좌파신문이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그렇다 해도 우파신문이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좌파 지식인의 글을 실어주는 파격을 보이기까지 한다. 민족주의만 비판하면 된다는 식이다.

2007 년 12월에 한겨레신문에서는 민족주의에 대한 지상논쟁을 마련했다. 여러 명의 학자들이 나와서 자기 나름의 소신을 피력했다. 그런데 여섯 명의 참가자 가운데 민족주의를 옹호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다른 한 명은 좀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나머지 네 명은 대체로 민족주의를 용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그 논쟁의 주제가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인 모양인데 참가자들의 구성을 그렇게 짠 것을 보면 신문사측에서는 민족주의가 유효하지 않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 버린 것 같다.

민족주의가 비판받는 이유들

그러면 민족주의가 이렇게 갑자기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최근 들어서 부쩍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같은 지구화의 영향을 들 수 있다.

20 세기 후반에 전 세계적인 산업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지구가 과거보다 상당히 좁아졌다.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이나 장거리 전화, 또 위성 TV같은 새로운 매체를 통해 지구가 점점 하나의 조밀한 망으로 짜여지고 있다. 항공산업이나 해운산업의 발전으로 국제적인 인적, 물적 교류도 크게 늘었다. 그러니 얼핏 생각하면 지구가 하나가 되고 있다는 미국 지구화론자들의 주장이 먹혀 들어갈 소지가 크다.

이런 생각의 변화에서 한국은 특히 돋보이는 나라이다. 외환위기 이후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마치 점령군처럼 진주하며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금융을 자유화하여 가능한 한 외국자본을 많이 들여오고 시장개방을 확대하여 외국 상품을 많이 사서 쓰고 젊은 사람들이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고 글로벌 인재가 되는 것이 절대명제가 되었다.
10 년 동안 쓸개 빠진 지식인들이나 관료들, 언론이 계속 그렇게 떠들어 대고 국민들을 오도했으니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이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민족주의를 마치 지나간 시대의 쓰레기쯤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공산권 붕괴 이후 구 소련지역이나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벌어진 민족분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보스니아에서의 종족적 대량학살은 대규모의 유혈사태를 가져왔다. 러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체첸인들의 독립전쟁도 그 원인이야 어쨌든 종족이나 민족분쟁을 유혈과 연결시키는 나쁜 선입견을 심어주는데 기여했다

국내 정치도 한몫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하에서 우익세력은 계속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해 왔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훨씬 심했다. 북한에 대해 경제 원조를 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반면 미국을 멀리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서 사용하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표현을 끄집어내며 끊임없이 민족주의를 헐뜯고 조롱했다. 민족주의를 세계의 흐름과 동떨어진 폐쇄적인 이념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매우 정략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영향은 학문세계에서 비롯했다. 1980년대 이후 서양에서 '근대주의적 해석'이라는 민족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며 기존의 민족주의 이론들을 완전히 압도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90년대에 번역서들을 통해 한국에도 전파되며 민족주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만들어 냈다. 한국에서 민족주의와 관련해 가장 많이 읽히는 에릭 홉스봄의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해석에 따르면 민족은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들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다. 또 우리는 보통 우리 민족이 5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믿어 왔는데 이들은 민족이라는 것의 역사가 고작 200년 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 우리는 상식적으로 민족이 먼저 있고 나서 민족주의가 나중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해 왔는데 이들은 반대 입장을 취한다. 민족주의가 민족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이 이렇게 지배계급에 의해 대체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으니 그 성격도 억압적이고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영토내의 소수 종족들을 억압하고 이웃 나라를 공격하고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지구화 시대이다. 국경의 문턱이 낮아지고 모든 나라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시대이다. 수많은 국제기구나 유럽연합 같은 것이 이미 그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민족국가는 멀지 않아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만약 근대주의적 해석의 이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민족주의를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민족주의로부터 탈출하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근대주의적 해석은 유럽중심적인 해석

그 러면 '근대주의적 해석'이라는 것이 그대로 받아 들여도 좋은 이론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상당히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근대주의자들은 민족을 18세기 말이나 19세기 초에 들어와 산업화나 자본주의의 발전,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실상 이미 16세기에 영국에서는 오늘날과 거의 같은 의미로 민족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또 17, 18세기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민족주의가 patriotism(애국주의)이라는 단어로 이미 나타난다. 산업화나 자본주의, 근대국가는 이런 경향을 촉진시킨 것이지 그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이 점에서 비역사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이들은 민족이 인위적으로 지배계급의 '사회공학'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나 실제로 민족의 본질은 언어, 종족성, 역사, 관습, 종교 같은 객관적 요소들이다. 특히 종족성이 중요하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왜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이나 캐나다에서 아직도 종족적 분리주의가 힘을 얻고 있는지 설명 할 수 없다. 또 구소련 지역에서 사라진 것 같았던 민족주의가 왜 폭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 들은 민족주의를 전체적으로 비판하기는 하나 그래도 서유럽의 민족주의와 동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민족주의를 구분한다. 전자를 시민적 민족주의로 좋은 것으로, 후자는 종족적 민족주의로 나쁜 것이라고 규정한다. 전자는 합리적 평화적이고, 후자는 혈통에 의존하여 맹목적, 파괴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서유럽의 민족주의도 실제로는 종족성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이런 구분은 정도의 차이일 뿐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은 식민지에서 벗어나서 독립을 쟁취하려 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민족주의를 매우 과소평가한다. 그래서 이 지역의 민족해방운동을 서양 교육을 받은 인텔리겐챠들이 무식한 대중을 선동한 결과로 본다. 이 지역에서는 산업화나 자본주의, 공공교육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전통사회의 문화능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근대 서양만이 문화능력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들은 민족주의를 주로 내부적인 억압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한다. 그래서 민족주의를 비윤리적인 이데올로기로 폄하한다. 자기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강대국들이므로 외부세계를 크게 의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 속의 민족주의는 대외적인 경쟁과 억압, 저항을 통해 나타나고 성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외부적 억압에 저항해야 하는 민족이나 나라들에게는 아직도 큰 도덕적 정당성을 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제3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의 경우 특히 그렇다. 그러한 경쟁과 억압이 사라지지 않는 한 민족주의도 사라지기 어렵다.

이들은 지구화 때문에 민족주의의 남은 생명이 얼마 안 된다고 주장하나 지구화가 그렇게 절대적인 과정은 아니다. 지금의 지구화는 세계적인 정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다. 만약 지금의 금융위기가 경제공황으로 발전한다면 지구화는 크게 후퇴할 것이고 나라마다 문을 걸어 잠그게 될 것이다. 또 지금의 지구화는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 이런 불평등한 형태의 지구화가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위 의 이야기로 근대주의적 해석이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유럽중심주의적인 이론으로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또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이론이다. 그럼에도 이런 이론이 우리 사회에서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우리 지식인들이 서양이론에 대해 별로 고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양 이론을 보편이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래서 근대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공동체'니 '발명된 전통'이니 '사회공학'이니 하는 단어들이 지식인들의 상투어가 되어 있고 민족주의는 모든 악덕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서양 강대국들 사람들의 입장과 한국인의 입장이 같을 수 있는가. 한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도 있으나 정말 그런가. 우리가 요사이 또 다시 외환위기의 악몽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은 이렇게 고민하지 않는 우리 지식인들, 정치인, 관료들이 우리에게 바친 기막힌 선물 덕택이다

[BOOK책갈피] 20년 만에 재출간된 ‘운동권 바이블’ - 중앙일보 / 2008-10-31

[BOOK책갈피] 20년 만에 재출간된 ‘운동권 바이블’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증보판) / 이진경 지음, 그린비, 432쪽

 1980년대 말 운동권의 이론서였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약칭 ‘사사방’)이 20여 년 만에 ‘증보판’으로 재출간됐다. 87년 첫 출간 당시, 진보적 학계와 운동권 사이에서 치열했던 사회구성체 논쟁의 판을 뒤흔들었던 문제적 저작이었다.

사회구성체 논쟁이란 한국사회의 기본 성격을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로 보느냐, 식민지반봉건사회로 규정하느냐 등을 놓고 벌어진 싸움이었다.

단순히 학술 논쟁이 아니었다. 당시 운동권은 한국 사회의 성격 규정에 따라 운동의 방법론도 민주주의 혁명인지, 사회주의 혁명인지가 달라진다고 보았다. 당시로선 대단히 ‘실천적’인 이론 투쟁이었다. 그 핵심적 논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사방’이 ‘전설’이 돼버린 것은 저자가 당시 24세의 대학원생이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증보판’ 형식으로 다시 나온 이 책은 87년의 ‘사사방’ 원본에 저자가 최근 새로 쓴 4편의 논문과 에세이를 덧붙였다. 새 이론에는 그가 모색해온 새로운 ‘코뮨주의(=공동체주의)’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저자 이진경(45·본명 박태호) 서울산업대 교수는 “80년대의 사유는 현실 문제에 대한 강력한 긴장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긴장감은 지금도 내 사유를 추동하는 힘이다”고 말한다.

이론이 저자의 ‘호구지책’으로 전락할 때 현실과의 긴장감은 떨어지며 제대로 된 성과를 가져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80년대 사상계의 ‘핫 이슈’였던 사회구성체 논쟁은 여전히 이 사회에 대한 현실적 사유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입장이다. 사회구성체론은 사회에 대한 정태적 분석틀이나 목적론적 세계관이 아니라 동적인 생성·변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구성체 논쟁이 지금에 와서 흥미로운 점은 80년대 초반까지 ‘진보 진영’에서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주장했던 안병직 교수가 현재 뉴라이트 진영의 대부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라이트(우파)가 강할 때 레프트(좌파)도 강해진다. 좌·우의 싸움이 서로 밀고 밀리는 ‘제로섬 게임’일 것 같지만 강자끼리 겨룰 때 양쪽의 역량이 강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현재 한국의 뉴라이트 이론은 종래 미국의 올드 라이트가 가졌던 단순한 근대화론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배노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