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redi 25 mars 2009

한국 근현대 의료문화사 1879 ~ 1960 / 서울대학교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한국 최고의 의학(료) 전문가와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이 2년간에 걸친 토의와 연구를 통해 한국 근현대 의학 · 의술 · 의학교육 · 의료행정 · 의醫문화사 · 의醫생활사 등을 최초로 개괄한 책이다.

‘몸과 의료’라는 키워드로 읽는 한국 근현대사이자, 사회 · 문화사적인 시각에서 전문 분야의 역사를 훑는 흥미로운 주제사이기도 하다. 특히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재미나게 읽도록 입체적인 구성과 해설을 시도하고 1000장에 가까운 흔치 않은 사진을 수록해 ‘볼거리’로서 인문 역사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였다.

특히 이 책은 의학이 ‘생명과 삶’을 다루기에 단순히 의학 기술과 교육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회적이고 생활사적인 측면을 포함해 의료 문화 전반을 다룸으로써 ‘몸’을 키워드로 하여 한국인의 근현대 삶을 이해하는 생생한 지식을 전달한다.

책머리에
책을 펴내며

1. 근대의학의 문을 열다 - 조선.대한제국의 서양 근대의학 도입 1879 ~ 1910
1. 국립병원 제중원 - 나라에서 서양식 병원을 세우다
2. 의학교와 광제원 - 나라에서 의사를 키우다
3. 대한의원 - 병원의 표준을 제시하다
4. 종두와 방역 - 마마귀신 물럿거라!
5. 일본인 거류지의 서양식 병원 - 일제의 그늘 아래 병을 고치다
6. 의료선교 - 믿어라, 나을지니
7. 한국인 의사와 의사단체 - 한국인 의사가 등장하다
8. 개항기 전통의학과 민간 처방 - 전통의학, 근대의학을 만나다

2. 일제강점기의 병원에 가다 - 일제강점기 의료의 식민지성과 근대성 1910 ~ 1945
9. 조선총독부의원과 경성의학 전문학교 - 식민지의 어둠 속, 형설지공의 마음으로
10. 자혜의원.도립의원 - 민심을 잡으려 병원을 차리다
11.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세브란스병원 - 한국에 자리 잡은 의료선교
12. 일제강점기의 의료선교 - 선교의 손길로 병자들을 보듬다
13.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와 부속의원 - 한국 학생, 제국대학에서 의학을 배우다
14. 지방 공립 의학전문학교 - 지방 곳곳에 의학의 등불이 켜지다
15.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 바늘 대신 청진기를 쥐다
16. 특수병원 - 병원, 산업현장에 가다
17. 한국인 의사들의 삶과 꿈 - 한국인 의사들, 열정으로 차별을 넘다
18. 입치사, 치과의사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 이 없으면 잇몸으로? 이제 옛말
19. 산파와 간호부 - 허가받은 삼신 할머니, 면허 가진 천사
20. 전염병과 방역 - 세상에서 가장 슬픈 면회
21. 신약과 의료기기 - 이 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22. 의생과 한의학 - 한의사를 허하라
23. 전시체제기의 의료계 - 전쟁의 포로가 된 의료계

3.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한국의학의 새 기운 - 해방과 전쟁, 의료체계의 개편 1945 ~ 1960
24. 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부속병원 - 해방된 한국 의학, 미래를 위한 진통을 겪다
25. 조선의학협회와 분과학회 - 의사단체가 재건되다
26. 해방 직후의 보건 의료 - 미군정의 전염병 박멸작전
27. 전쟁기 의료와 군진의학 - 전쟁의 고통 속에서 한국의학의 새 기운이
28. 의과대학 및 부속병원의 증설 - 어느새 의과대학의 8개..

경산일록 (經山日綠) / 정원용 / 보고사

일기를 통해본 조선의 정치.생활사
연합뉴스

조선 후기 정치사와 사대부의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기록인 ’경산일록’(經山日綠.보고사 펴냄)이 한글로 번역돼 출간됐다.

경산일록은 조선 후기 문신 정원용(1783-1873)이 과거에 급제한 1802년부터 1873년 죽을 때까지 약 71년에 걸쳐 쓴 일기다. 정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때의 정치 사회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경산일록은 그간 가장 오랫동안 쓴 일기로 알려진 황윤석(1729-1791)의 ’이재난고’(50년)보다 기간이 22년 더 길다.

정원용의 증손자인 위당 정인보가 1940년대 후반에 연세대에 기증한 책으로, 번역되기 전까지는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정원용이 거의 빼먹지 않고 날마다 일기를 썼기 때문에 경산일록은 분량만 17책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연세대 허경진 교수가 완역한 한글 번역본도 6권(약 2천500쪽)에 이른다.

정원용은 19세 때 과거 급제한 뒤 1841년에 우의정에 제수됐으며 이후 약 30년간 재상의 자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신이다.

특히 태어나면서부터 과거 급제 전까지의 내용도 포괄하기 때문에 경산일록은 사실상 그의 구십 평생을 기록한 일기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허 교수는 전했다.

정원용은 경산일록을 통해 당시 어수선했던 조선시대 후반기의 정치사를 자세하게 조명한다.

이를테면 헌종이 죽고 철종이 즉위하던 때를 ’왕조실록’보다 더 상세하게 기록했고, 고종이 즉위하는 과정도 꼼꼼히 담았다. 또 과거 급제로 관리에 입문하는 과정부터 출퇴근하는 모습까지 자세히 기록돼 있어 당시 조선 사대부의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자료로도 평가받는다.

허 교수는 “정원용은 숨지는 날 오전까지 일기를 썼다”며 “그는 지방 행정관으로 가든 청국으로 연행을 떠나든, 모든 내용을 기록했기 때문에 이 책은 당시의 상황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 / 홀거하이데, 강수돌 / 이후

자본주의 떠받치는 노동자의 두 얼굴
연합뉴스

국적을 뛰어넘어 스승과 제자가 함께 자본주의를 성찰한 책 ’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이후 펴냄)가 출간됐다.

독일 홀거하이데 ’사회경제행위연구소’ 소장과 그에게서 배운 고려대 강수돌 교수가 자본주의에 대해 나눈 생각들을 강 교수가 정리했다.

20여 년 전 브레멘 대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이들은 노동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허점을 짚는다.

신자유주의 이후 ’자유 경쟁’이라는 말이 유행 타듯 번지고 있지만 자유로운 경쟁이란 애초에 불가능하고, 그 안에는 가진 자가 더 가지게 되는 자본의 논리가 숨겨져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렇다고 저자들이 자본주의를 완전히 배격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노동자는 피해자일 수도, 가해자일 수도 있기에 저자들은 노동자의 권리옹호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

저자들은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자신도 어떤 식으로든 그런 체제 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노동 사회 패러다임에 단단히 묶여 있음을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일차적 문제이지만 그 구조를 떠받치는 우리 자신의 태도나 행동도 문제라는 것이다. “먹고 살자니 별수 있나?”라는 태도야말로 “희생자이면서도 가해자”라는 노동자의 두 얼굴을 이루는 요소라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마치 직장 내에서 성차별에 시달리다 부당하게 해고된 한 여성이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면서 점차 이주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켄 로치의 영화 ’자유로운 세계’처럼, 노동자들은 상황에 따라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 노동자의 이중성을 극복할 만한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생명 순환적인 1차 산업 중심의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고, 과감하게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무엇이 참된 행복이고, 삶인지, 끝없이 성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lundi 16 mars 2009

인물로 읽는 한국사 / 이이화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사람들] 인물한국사 완간 이이화씨
"외국인 대상 한국통사 집필 중"

역사학자인 이이화(72)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의 역사 인물 탐구 시리즈인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가 최근 10권으로 완간됐다.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는 지난해 1월 출간된 왕과 신하들을 다룬 '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를 시작으로 한국 근대와 현대에 활동한 인물들을 다룬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까지 260여명의 인물을 제왕과 위정자, 변혁을 꿈꾼 혁명가, 문학가와 예술가, 사상가와 실학가, 종교가,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개화기 지식인, 국내외 독립운동가, 한국사의 맞수들, 해방공간의 주역들까지 다양한 기준으로 나눠 소개다.
마지막 권인 10권에는 이승만과 박정희, 신익희, 장면, 조봉암, 조병옥, 김일성과 김두봉, 허헌, 백남운까지 좌ㆍ우파를 가리지 않고 현대 정치가 10명의 약전(略傳)을 담았다.

1~9권까지 내용은 대부분 예전부터 여러 군데에 썼던 것을 내용을 손질하고 보충해 펴낸 것이지만 10권은 완전히 새로 쓴 내용이다.

이 이사장은 처음엔 이들에 대한 글쓰기를 꺼렸다고 한다. 이들에 대한 평가가 그동안 정치상황에 따라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경우가 많은 탓에 평가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정반(正反)의 기준은 자신의 몫이라는 생각에 더는 미루지 않기로 하고 책을 썼다고 토로한다.

"현대 인물은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오늘날 이승만이나 박정희 문제를 다 다루는데 내가 너무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썼습니다. 아내가 읽어보더니 재미는 있다고 하더군요. 북한에도 여러번 다녀왔는데 이번 책에 김일성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써서 이젠 북한엔 못 가게 생겼어요(웃음)"

향후 계획을 묻자 이 이사장은 한국 역사를 외국에 알리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외국에 우리 역사를 소개하는 책이 너무 없어요. 그래서 길지도 않고 짧게 외국인들이 우리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한국통사책을 쓰고 있어요. 정치사가 완전히 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사보다는 문화사 중심으로 컬러 사진을 많이 넣어 올해 말쯤 출간할 예정입니다"

새로 나올 책은 한글판을 먼저 펴낸 뒤 영어를 시작으로 중국어와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판까지 여러 언어로 출간해 한국사를 외국에 널리 알릴 계획이다.

한편 이 이사장은 최근 시류에 편승한 대중역사서가 붐을 이루고 있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제 나름대로 책을 쓰는 원칙이 있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게 TV 사극에서 나오는 궁중 비사나 시샘하고 싸우는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여인 열전 같은 것도 여권(女權)의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모르겠지만 왕비들이 싸우는건 여권하고 아무 관계도 없어요. 이런 게 너무 많아요. 그런 소재를 가지고 대중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은 좋지만 그런 것보다도 너무 상업주의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zitrone@yna.co.kr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 / 가노 마사나오 / 삼천리

인물로 본 일본의 근대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출간
연합뉴스

동아시아 주변국에 불과했던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을 통해 아시아 최강국으로 도약했다. 수십 년만에 서구 열강에 뒤지지 않는 비약적 발전을 일궈낸 일본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저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가노 마사나오 일본 와세다대 명예교수는 최근 번역출간된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삼천리 펴냄)을 통해 이 같은 일본의 발전에는 사상가들의 힘이 컸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친일 지식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부터 대표적인 친한파 지식인 야나기 무네요시까지 근대를 살다간 일본 사상가 50인을 조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후쿠자와는 윗사람에 비굴하고 아랫사람에 오만한 일본인의 태도에서 사회의 병폐를 찾았다. 이를 ’정신의 노예’라고 주장하는 후쿠자와는 자유로운 독립체인 ’국민’을 통해 이 같은 병폐를 없애자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개혁 정신은 전적으로 일본에만 국한됐다. ’아시아에서 벗어나라’는 탈아론(脫亞論)은 “우리 일본국은 잡아먹는 자의 대열에 끼여 문명국 사람들과 더불어 같이 좋은 먹이를 찾아야한다”는 제국주의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었을 뿐이었다.

반면 제국주의를 ’20세기의 괴물’이라 묘사한 무정부주의자 고토쿠 슈스이는 후쿠자와와는 정반대 입장에 서 있던 인물이다.

신채호를 동아시아 아나키즘의 원조로 평가한 그는 사회주의를 “세계평화의 이념”이라고 주장했고, 점차 노골화되는 한국 점령에 대해서는 일본이 드디어 “마각을 드러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대표적인 반제국주의자였다.

타고난 반골기질을 바탕으로 시대 정신에 역주행했던 그는 결국, 천황암살 계획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1911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마흔살의 젊은 나이였다.

“천황아래에 만민평등”을 주장한 기타 잇키, “동양은 결합해야 한다. 하지만 결합과 정복을 통한 통일을 혼돈해서는 안된다”고 말한 야나기 무네요시, “만주를 포기하고, 조선과 대만의 독립을 인정하라”고 주장한 저널리스트 이시바시 단잔도 비중있게 소개된다.

이밖에 대안교육과 생활글쓰기 운동(노무라 요시배에), 환경운동(나다카 쇼조), 여성해방운동(히라쓰카 라이초) 등 다양한 운동에 참가했던 사상가의 삶도 조명된다.

짜장면뎐(傳) / 양세욱 / 프로네시스

자장면 한 그릇에 담긴 한중 문화사
'짜장면뎐' 출간
연합뉴스

지난 2005년 인천시는 ’자장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를 열었다. 2005년이 자장면 탄생 100주년이 된 것은 한국식 자장면의 발상지로 알려진 공화춘(共和春)건물이 1905년 세워졌다는 설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양세욱 한양대 중문과 연구교수는 자장면을 키워드로 한중 교류사와 우리나라 근현대 생활사를 추적한 책 ’짜장면뎐(傳)’(프로네시스 펴냄)에서 “공화춘 탄생설이나 자장면 탄생 100주년 운운은 이해 당사자들의 희망이 키워낸 신화일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자장면의 기원에 대해서는 베이징과 산둥 지역에서 삶은 면에 볶은 면장과 각종 야채를 얹어 비벼먹는 전형적인 가정식 요리에서 그 기원을 찾으며, “중국에는 자장면이 없다거나 심지어 자장면은 ’우리 민족의 위대한 발명품’이며 세계 최초로 자장면을 만든 곳은 인천 차이나타운이라는 식의 주장은 중국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한 시절의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한국식 자장면의 발상지로 알려진 공화춘의 기원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자장면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는 공화춘이 1905년 건립됐다는 전제에서 시작됐지만 2007년 한양대 건축학과 동아시아 건축역사연구실의 ’공화춘 기록화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공화춘에 사용된 목재 10점의 나이테 패턴을 조사한 결과 1906년 벌목된 나무가 사용됐다는 것. 이를 근거로 저자는 1905년에 지어진 건물에 1906년 벌목된 나무가 사용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또 조사보고서대로 공화춘의 건립 연대를 1907년이라고 보더라도 처음부터 공화춘이 식당으로 사용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공화춘이 건물 관리대장에 정식등록된 1948년 이전의 역사는 불분명한 기억이나 추정에 의한 재구성일뿐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저자는 자장면의 표기법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국립국어연구원에 따르면 ’자장면’이 올바른 표기지만 책은 어디에서도 ’짜장면’을 파는 중국식당은 있어도 ’자장면’을 파는 식당은 없다는 의미에서 일부러 ’짜장면’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그는 ’자장면’ 표기가 언중(言衆)과 시장 모두에게서 철저히 외면받는 표기라면서 언어정책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자장면’을 ’짜장면’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과 한국을 넘나들며 자장면의 문화사를 살피던 저자는 한 세기 전 조용히 황해를 건너와 귀화한 자장면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아쉬워한다. 외식문화의 꽃으로, 산업화의 전투 식량으로 주목받았던 자장면이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소임을 마감하고 있는 자장면에 대해 저자는 “지금까지 이런 음식은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있기 어려울 것”이라며 “자장면에, 자장면의 성공 신화를 함께 이룬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지난해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선정한 우수저작및출판지원사업 당선작이다.

lundi 9 mars 2009

남북경협 활성화 시대에 대비한 동해연안 남북접경지역의 평화적인 이용방안 /김영봉, 이승복, 김은정 / 국토연

분단 후 반세기를 넘긴 한반도는 군사적 대치와 핵문제로 인한 긴장 속에서도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온 결과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의 상봉, 그리고 단절된 교통망의 연결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하였다. 특히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건설은 교류협력사업을 통한 화해와 항구적인 평화의 정착을 위한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으며 남북간 교류 협력에 대한 희망을 안겨 주었다.
최근 금강산에서의 관광객 피살사건에 따른 관광의 중단과 남북한 당국간의 대화 단절 등은 그간 이루어 놓은 남북간의 화해와 평화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이와 함께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짐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동안 남북관계는 수차례의 대화와 단절을 거듭하면서 발전하여 왔으며 이러한 상황은 국내외적인 여건에 따라 앞으로도 반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본 연구에서는 남북 접경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한 교류협력사업의 활성화와 협력기반의 구축을 위한 동해연안 남북 접경지역 교류협력사업의 추진방안을 마련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첫째로, 환동해 협력시대에 대비하여 동해연안 남북 접경지역의 금강권과 설악권의 연계관광사업, 동북아 물류항로 개설사업 등 이 지역에서 추진 가능한 사업들의 여건 조성을 위한 교류협력사업의 추진방안을 마련하였다. 둘째로, 동해연안 해상 군사분계선 주변해역에서의 빈번한 어선의 월선 등으로 인한 군사적 긴장관계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남북한 주변해역에서의 공동어업활동 및 자원공동개발방안을 모색하였다. 셋째로, 남북 접경지역에서 가능한 교류협력사업들의 우선순위를 도출하고 추진방향을 제시할 뿐 아니라, 교류협력사업에 있어 발생하는 효과를 정량적 가치인 경제적 파급효과를 분석하여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교류협력사업의 추진 및 관리를 위한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법․제도적 지원방안 및 재원조달 방안을 마련하였다.
이 연구는 먼저 동해연안 접경지역에서의 교류협력 여건과 과제를 분석 평가하여 이 지역의 잠재력과 활용에 따른 과제를 도출하였고, 동시에 외국의 접경지역에서의 평화적 이용 및 협력사례를 분석함으로써 동해연안 남북 접경지역에서의 교류협력사업에 적용할 수 있는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동해연안 남북 접경지역에서의 교류협력 방향을 설정하고 남북이 협력하여 추진해 나아갈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였다. 동시에 남북이 교류협력을 추진해 나아갈 수 있는 사업들을 선정하여 단계별 추진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제시하였다.
동해연안 남북 접경지역에서의 교류협력사업의 추진은 금강권과 설악권의 연계를 통한 교류협력사업의 추진과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가져오고, 나아가 동해북방한계선에서의 공동어업을 통한 평화와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동해연안 생태계의 보전과 문화․역사 자원의 발굴 및 보존을 통한 관광자원의 다원화로 동북아권에서의 관광경쟁력을 높여 줄 것으로 기대된다. 본 연구에서 제시한 교류협력사업들이 동해 남북 접경지역에서 실행되어, 금강산관광의 중단으로 인한 남북한 긴장이 해소되고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의 장으로 다시 회복되어 접경지역에 평화지대가 구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목차 ]

요 약 i

제1장 서론

1. 연구의 배경 1
2. 연구의 목적 3
3. 연구의 범위 4
4. 연구의 방법 5

제2장 동해연안 남북접경지역의 위상

1. 개념정리 9
1) 접경지역의 개념 9
2) 비무장지대의 개념 10
3) 남북교류활성화의 개념 11
2. 동해연안 남북접경지역의 전략상 위치와 역사성 11
1) 전략상의 위치 11
2) 역사적 고찰 12
3. 동해연안 남북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 필요성 14

제3장 동해연안 남북접경지역의 교류협력 여건

1. 동해연안 남북접경지역의 현황 및 문제점 15
1) 접경지역의 현황 15
2) 접경지역의 문제점 23
3) 선행연구 현황 및 차별성 24
2.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남북 합의 및 구상 27
1) 정부차원의 제안 27
2) 접경지역에서의 기존 교류협력사업 추진 실태 32
3) 기존계획 분석 34
3. 동해연안 접경지역의 여건분석 38
1) 분석 방법 38
2) SWOT 분석 38
3) 환경요인의 인과관계 분석 41
4) 추진전략 도출 42

제4장 외국 접경지역의 협력사례와 시사점

1. 외국 접경지역의 협력사례 45
1) 동·서독 45
2) 중국·대만 47
3) 남북 예멘 49
2. 외국 접경지역 교류협력의 시사점 51

제5장 동해연안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협력사업 추진방안

1. 협력사업 추진 기본방향 및 전략 55
1) 협력사업 추진 기본방향 55
2) 협력사업 추진전략 58
2. 교류협력사업의 선정 61
1) 추진체계 61
2) 선정절차 63
3) 협력가능사업 도출 64
4) 교류협력사업 선정 및 중요도 분석 68
5) 교류협력사업의 추진 단계 75
3. 교류협력지구 지정 76
1) 교류협력지구의 정의 76
2) 기준의 설정 76
3) 지역 평가 및 지정 77
4) 협력지구의 선정 78
4. 평화적 이용을 위한 협력사업 추진방안 79
1) 교류협력지구의 조성 79
2) 주요 교류협력사업 세부추진 방안 81

제6장 파급효과 분석 및 제도적 지원방안

1. 파급효과 분석 105
1) 분석 개요 106
2) 분석 방법 108
3) 분석 결과 113
4) 결론 119
2. 제도적 지원방안 120
1) 관련 법·제도 개선 120
2) 소요재원 조달방안 123

제7장 결론 및 향후과제

1. 연구의 정책적 기대효과 125
2. 연구의 특징과 한계 129
3. 정책건의 및 향후 연구과제 130
4. 맺음말 131

참고문헌 133
SUMMARY 139
부 록 143

북한체제의 이해 / 체제통합연구회 엮음 / 명인문화사

북한의 체제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분석결과를 제시하는 책이다. 통상적으로 ‘체제’라 하면 ‘제도’라는 구조적 측면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나 제도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기본구조이기 때문에 그 제도의 적합성과 효율성을 판단하려면 그 제도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정책을 함께 연구해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제도와 정책적 측면을 아우르는 체제연구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를 변화와 지속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서문

제1장 정치.행정체제: 변화실태와 한계 / 최진욱
1. 서론 ..1
2. 국가 기관 ..2
국가기관의 조직원리 | 중앙국가기관 | 지방국가기관
3. 조선노동당 ..12
조선노동당의 지위와 역할 | 중앙당 | 지방당
4. 북한 당.국가체제의 기원과 변화과정 ..21
소련식 당.국가체제 | 중국식 당위원회중심체제 | 북한의 당?국가체제
5. 1998년 헌법개정이후 새로운 당?정관계의 모색 ..28
내각의 위상강화와 기능 조정 | 당의 역할 축소 | 선군정치의 정치적 함의
6. 결론 ..32

제2장 경제제도: 변화와 지속 / 이 석
1. 서론 ..37
2. 북한 경제제도의 전형: 구조와 형태 ..39
완전 계획화 제도 | 전민 (식량)배급제도와 농민시장 |
산업관리제도: 성(省) 제도와 대안의 사업체계 | 농업관리제도: 위원회 제도와 주체농업
3. 북한 경제제도 변화의 연대기 ..54
제도변화의 시발점: 1980~1990년대 초반까지 |
제도의 와해와 새로운 전환: 1994~1997년 | 변화와 지속: 1998년~현재
4. 제도 변화의 내용과 평가 ..63
완전 계획화에서 계획의 분권화?유연화로 | 전민 배급제에서 배급과 시장의 공존으로 |
산업 및 농업의 관리제도: 변화인가 지속인가?
5. 결론 ..69

제3장 외교정책: 이중성의 지속과 변화 / 김계동
1. 서론 ..75
2. 북한 외교정책의 기조 ..76
북한외교정책의 목표와 이념 | 북한 외교정책의 이중성
3. 의존적 동맹외교와 자주외교 ..81
공산체제공고화와 진영외교의 강화 | 북한 의존외교의 제도화: 중국 및 소련과의 동맹 |
동맹 이후의 외교: 의존과 갈등의 이중주
4. 체제생존을 위한 외교활로 모색: 개방과 벼랑 끝 외교 ..89
대서방 외교정책의 기원 | 탈냉전에 따른 생존외교의 모색 |
이중성 외교의 지속과 변화: 개방과 벼랑 끝 외교
5. 결론 ..101

제4장 군사제도와 정책 / 서주석
1. 서론 ..107
2. 북한 군사력의 역사적 변천 ..108
북한군의 창건 | 6?25전쟁을 전후한 중?소 의존 |
4대 군사노선 수립과 독자적 군사력 건설
3. 북한의 군사기구와 군사력 ..114
북한의 군사지도기구 | 북한군의 편성..

왕을 참하라 - 상, 하 /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동서양의 역사에 정통한 재미 역사가가 쓴 독특하고 기발한 새로운 개념의 조선사 책이다. 우리가 학교 교육에 의해 잘못된 역사를 배웠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조선 역사에 관한 폭넓은 연구를 토대로 기존의 사가들이 감히 꺼내기 어려웠던 조선사의 숨겨진 치부들을 밝혀내고 있다.

이 책은 두 가지 점에서 기존의 조선사 책들과는 분명히 대별된다. 첫째, 조선의 역사를 보는 관점이 왕과 양반 계급으로 대표되는 지배층의 관점이 아니라, 신분과 출신이 천하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아온 피지배층의 관점에서 조선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둘째, 이 책은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과 필체가 일반적인 역사서와 판이하다. 먼저 이 책은 딱딱한 문어체가 아니라 구어체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는 딱딱하고 학술적인 서술 방식 때문에 역사서에 접근하지 못했던 일반 대중들이 쉽게 역사책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 27명의 왕들 가운데 명군 세종(4대)과 정조(22대)를 제외한 다른 왕들 가운데 그나마 ‘밥값이라도 한 왕’은 5~7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유부단함으로 조광조의 개혁정치를 그르쳤던 중종(11대)을 ‘얼뜨기’로, 문정왕후의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명종(13대)을 ‘마마보이’로, 무엇을 했는지 잘 알 수 없는 헌종(24대)과 철종(25대)을 ‘하는 일 없이 세월만 축낸’ 왕으로 묘사한다.

상권

1. 조선이라는 나라의 국체와 사회제도 그리고 문물
2. 조선의 개국과 조선의 왕들
3. 제1대, 콩가루 집안의 태조 이성계와 소설 함흥차사
4. 여말선초의 인물
5. 그냥 잠깐 앉아 계시다가 내려온 제2대 정종과 꼬마 동생들을 패대기쳐 죽인
제3대 태종 이방원
6. 동양 역사상 최고의 명군 제4대 세종
7. 우리 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 훈민정음 창제
8. 요절한 제5대 문종, 제6대 비운의 소년 단종과 제7대 야심 덩어리 수양대군 세조
9. 명이 짧았던 제8대 예종과 잘 먹고 잘 살다 간 제9대 성종
10. 철딱서니 없이 황제를 흉내 낸 제10대 연산군과 사화의 시작
11. 제11대 얼뜨기 중종과 조광조의 좌절
12. 독살당한 제12대 인종과 제13대 마마보이 명종, 그리고 부패한 암탉 문정왕후
13. 비겁하고 간교한 소인배 제14대 선조와 망국의 당쟁 시작
14. 세계 최강 육군 국 일본과 세계 최강 해군국 조선의 격돌, 조일전쟁의 진상
15. 개혁의 좌절, 아까운 제15대 광해군
16. 무능하고 잔인한 제16대 인조와 소현세자의 독살
17.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쪽팔리는 조청전쟁

하권

18. 북벌을 꿈꾼 미남 군주 제17대 효종과 별 볼일 없었던 제18대 현종
19. 사생결단의 당쟁을 즐기며 왕권을 강화한 제19대 숙종과 당쟁에 희생된 장희빈
20. 독살설의 한가운에 있었던 장희빈의 아들 제20대 경종
21. 원죄를 가지고 즉위한 제21대 영조와 당쟁에 희생된 사도세자
22. 조선의 마지막 불꽃 제22대 정조의 미완의 개혁
23. 조선의 천주교와 실학
24. 천재들의 시대
25. 제23대 허수아비 순조, 그리고 조선의 숨통을 막아버린 요망한 암탉 정순왕후와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26. 세월만 축낸 제24대 현종과 제25대 강화 촌놈 철종
27. 반란과 격변에 휩싸인 청나라
28. 격동의 시대를 산 제26대 고종과 풍운아 대원군
29. 실패한 혁명가 김옥균의 삼일천하, 갑신정변
30. 미완의 혁명 동학농민전쟁과 녹두장군 전봉준
31. 청일전쟁
32. 조선의 마지막 몸부림과 대한제국
33. 러일전쟁과 일본의 동양 제패
34. 옥새가 없던 제27대 순종과 500년 왕조 조선의 멸망

안중근 평전 / 김삼웅 지음 / 시대의창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가로서뿐 아니라 세계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선각적인 지도자였다. 하얼빈 의거 말고도 국채보상운동, 교육사업, 의병전쟁 등 수많은 구국 운동에 참여했고,<동양평화론>을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동양 평화에 대한 지론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동아시아의 현재와 미래의 ‘평화구도’와 공동체 모델로 인식되는 대단히 선구적인 것이었다. 그는 한.중.일이 공동으로 동양평화회의를 구성하고, 국제적 분쟁지인 여순을 중립화해 그곳에 동양평화회의 본부를 설치할 것과 3국 공동의 개발은행을 설립해 공동화폐를 발행하자고 제안했다.

이 책은 안중근 의사의 처형 전후에 대한 여러 사람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 그날의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책 후반부에서는 안중근 의사 순국 후 국내외에서 쏟아진 시문과 각종 전기 등을 수록해 당시 안중근 의사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제1장 북두칠성 정기 안고 태어나다
망해가는 나라에 의열사 부르네
이토 히로부미, 고종황제 퇴위시켜
일본의 조선침략론 불타오르고
‘탈아론’의 첫 희생이 된 조선
7개의 흑점 있어 아명 응칠이라 지어
큰 인물, 아버지 안태훈
신천군 청계동으로 이사
유복했던 어린 시절
글공부보다 상무기풍 키워

제2장 개화인물 안태훈과 상무소년 안중근
동학군에 맞서 담대한 용기 보여줘
40명 정병으로 1000여 동학군 물리쳐
‘갑오의려’의 개화적 시대인식
떡잎부터 남다른 ‘될성부른 나무’
안씨 가문에 밀려든 첫 번째 위기
백범 김구를 초청하다
안중근 가문과 김구의 인연
술마시고 노래하던 호방한 시절도

제3장 개화·천주교 수용을 통해 안중근 사상 형성
19세 때 영세 입교 후 천주교인으로 활동
좌절된 천주교대학 설립의 꿈
해서교안으로 탄압받아
의협심과 정의감으로 사회문제 해결
안태훈의 천주교 입교 시기 재론

제4장 민권·민족의식에 눈뜨고 구국운동 나서
러일전쟁 와중에 한국 침탈한 일제
망국위기에 계몽운동 나서다
아버지와 망명계획 세우고
상해 한국재산가들에게 실망하고
‘민족’의미 헤아린 민족주의자
국내 사명 깨닫고 귀국길에
돈의학교와 삼흥학교 세워
서북학회 그리고 국채보상운동에 참여

제5장 구국의 꿈을 안고 고국 떠나 의병 창설
군대 해산 과정 목격
현대식 무기와 활·죽창의 대결
1907년 8월 1일 고국 떠나
간도에서 다시 러시아로
이범윤 등 만나 의병전쟁 설득 나서
의병참모중장으로 출전

제6장 의병전쟁 그리고 단지동맹
‘처변삼사’, 의병을 조직하고
의병 이끌고 국내 진입작전
사로잡은 왜군포로 석방이 화근 돼
만국공법 인식한 선각자
선혈로 맺은 ‘단지동맹’

제7장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를 쏘다
협객 형가의 의거
거사자금 100원 빼앗다
“이토 처단은 내가 한다”
거사 동지 우덕순 등 만나
[장부가] 지어 의기 높이고
을사늑약 이래 희소식, 10월 26일
세 발의 탄환 이토를 토살하다
하늘을 향해 ..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 이길상 지음 / 푸른숲

2003년부터 외국 교과서의 한국 관련 내용을 검토해 해당 국가에 수정을 요청해온 저자가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종합해 세계 여러 나라의 교과서가 한국에 대해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오늘날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 지닌 객관적 위상을 냉정하게 평가한 뒤 교과서 외교를 통해 한국이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가 검토한 외국 교과서는 40여 개국의 500여 종에 달한다. 거의 모든 대륙과 문화권을 망라하고 있기에 이 책이 보여주는 여러 사례는 경제력이나 한류 등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의 위치를 가늠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급속한 발전을 이룬 경제 대국에서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영양 부족 국가에 이르기까지 서로 충돌하는 다양한 이미지는 아직 세계인의 인식 속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교과서 문제는 정부가 나서 큰 목소리로 외교 문제화할 게 아니라, 민간 차원의 학술적인 노력과 문화 교류를 통해 점진적으로 해결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역할은 그런 노력을 뒷받침할 해외 한국학 지원, 성실하고 꾸준한 국가 홍보라는 것이다.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 / 신기욱 지음, 이진준 옮김 / 창작과비평사

단일민족의식은 해체돼야 할 신화적 믿음에 불과한가 아니면 인정해야 하는 실체인가? 민족주의가 한국사회에 끼친 공과는 무엇인가? 이 책은 이러한 의문들을 풀기 위해 종족동질성의식에 기반한 한국 민족주의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그 정치적 원리와 역사적 유산을 치밀하고 광범한 연구조사로 낱낱이 밝히고 있다.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글
서문 한국 민족주의의 뿌리와 정치를 규명하며

1부 기원과 발전
1장 범아시아주의와 민족주의
2장 식민지 인종주의와 민족주의
3장 국제사회주의와 민족주의
4장 북한과 ‘우리식 사회주의’
5장 일민주의와 ‘조국근대화’

2부 논쟁적인 정치
6장 민족 만들기에서 보편주의와 지방주의
7장 전통, 근대성, 민족
8장 분단과 민족대표성의 정치
9장 민족, 역사, 정치

3부 최근의 경향
10장 종족정체성과 민족통일
11장 민족주의와 세계화 사이에서

결론 계보, 유산, 미래

장편동화 ’1940년 열두살 동규’ / 손연자 / 계수나무

3.1절을 앞두고 3.1운동 이후 일제 강점기의 시대상을 그린 동화 ’1940년 열두살 동규’(계수나무 펴냄)가 출간됐다.

10년전 단편집 ’마사코의 질문’을 통해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고통을 그려냈던 손연자 씨는 다시 같은 시대를 다룬 장편 동화를 통해 ’돌아보고 반성하며 앞날을 내다보기 위해’ 역사를 이야기한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통치가 이뤄지던 1940년. 12살 소년 동규는 친구의 엄마가 가정부로 일하는 집의 아들인 시까노스케와 친해지면서 시까노스께의 아버지와 외삼촌이 종로경찰서의 고등계 형사라는 것과 동경으로 미술 공부를 하러 떠난 자신의 아버지가 요주의 인물로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에 동규에게 태껸을 가르쳐 주던 숯장수가 찾아온다. 동규의 할아버지가 숯장수에게 돈이 든 전대를 건네는 순간 일본 형사가 들이닥치고 할아버지가 경찰서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와중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평범한 소년 동규의 삶은 이후 극적으로 변한다. 우여곡절 끝에 강원도 산골을 거쳐 아버지가 있는 북간도로 건너간 동규는 독립군으로 활동하는 아버지를 만나며 자신도 소년 독립군으로 거듭난다.

동화정책을 썼던 일본에 맞서 아이들이 근본을 잃지 않도록 가르쳤던 조상의 모습도 그려진다. 자신의 이름을 ’요시야마 도오규’라고 말하는 동규에게 할아버지는 회초리를 들며 “거슬러 살지 않으면 길들어 살게 된다”며 “네가 최동규라는 걸 꿈에도 잊지 말 것”을 가르친다.

일제의 참혹한 학살현장을 담은 사진과 초가집 동네의 국기게양대에 일장기가 나부끼는 사진을 보며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는 “역사는 덮으라고 있는 게 아니라 돌아보고 반성하며 앞날을 내다보라고 있는 것”이라며 어린이 독자들에게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되찾은 이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겨줄 것”을 당부했다.

김산호 그림. 232쪽.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 / 박노자ㆍ허동현 / 푸른역사

’우리 역사 최전선’(2003)과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2005)를 통해 다양한 한국 근대 100년의 모습을 토론하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교수와 허동현 경희대 교수의 또 다른 논쟁을 담은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푸른역사 펴냄)가 출간됐다.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2005년 10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연재했던 내용을 묶은 이 책에서 두 사람은 각각 ’길들이기’와 ’편가르기’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 근대 100년을 이야기한다.

한국 근대 100년을 ’길들이기’로 보는 박 교수에게 춘원 이광수는 두 얼굴의 지식인이다. 춘원은 간디에 대한 예찬을 통해 톨스토이의 화두인 평화와 비폭력을 옹호했지만, 한편으로는 ’힘이 있는 자만이 자유와 개성을 논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사회진화론의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을 신조로 삼은 인물이었다.

박 교수는 이런 춘원의 두 얼굴이 민족을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근본단체’로 본 데서 연유한다고 말한다.

그는 춘원이 근대를 배우면서 독립적인 개인의 존엄성과 권리, 개인의 생명과 자존 같은 부분을 거의 처음부터 제외했기 때문이라며 “’계급’을 아예 ’이기적 욕망의 결과물’로만 치부해 배제하고 ’개인을’ 개인 그 자체가 아닌 하나의 부속으로만 인식하는 거대 담론으로부터 출발한다면 이와 같은 비극적 결과는 거의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허 교수는 춘원이 한결같이 국가주의 내지는 민족주의 가치를 추구했으며 기독교나 불교를 비롯한 여러 사상은 민족과 국가에 유익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취사선택됐던 종속적 가치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허 교수는 그 근거로 춘원이 1910년에 쓴 ’나(余)의 자각한 인생’ 중 한 구절을 제시한다. 그는 ’국가의 생명과 나의 생명과는 그 운명을 같이하는 줄을 깨달았노라… 나는 이름만일 망정 극단의 크리스천으로, 대동주의자로, 허무주의자로, 본능만족주의자로 드디어 애국주의에 정박하였노라’라는 구절을 통해 춘원이 사회진화론의 세례를 받기 훨씬 이전부터 관념적인 ’민족’이나 ’국가’를 최고의 가치로 삼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허 교수는 춘원이 종교적 사랑을 예찬하면서 한편으로는 일그러진 근대를 찬양한 야누스적 존재라기보다는 ’민족’이라는 실에 자신이 삶의 궤적에서 만난 다양한 사조라는 구슬들을 꿴 일관된 민족주의자로 보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두 사람은 이 밖에도 ’민족개조론’과 ’매춘여성’, ’신여성’, ’한류’(韓流), 식민지 시대의 여성 등 한국 근대 100년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논쟁하며 ’다원적이고 총체적’인 역사 쓰기를 시도한다.

Copyrights ⓒ 연합뉴스.

세상을 바꾼 여인들 / 이덕일 / 옥당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였을까? 율곡 이이가 쓴 《나의 어머니 일대기》에 의하면 사임당은 결혼 후 19년이 지나서야 시댁에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별다른 내조를 한 것도 없고, 시어머니 얼굴을 처음 본 것도 혼인한 지 3년이 지나서였다. 현모양처 이미지는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왕건의 손녀 천추태후는 권력욕에 눈먼 음녀(淫女)인가? 그녀는 장성한 아들을 두고도 섭정(攝政)을 감행하고, 여동생의 자식을 없애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 정도로 규정짓기에는 그녀가 남긴 족적이 너무 크다고 평한다. 천추태후는 성종의 중국식 유교 정치에 맞서 고려 전통을 지키고 '대제국 고려'를 만들려고 했던 여걸이었다. 김치양과의 간통도 당대의 정조관념으로는 문제 될 것 없었다.

남 성 지배구조에 의해 왜곡된 이미지를 갖게 된 역사 속 여성 25명의 이야기다. 역사학자인 저자가 풍부한 사료를 근거로 이들의 실제 인생을 재추적했다. '출가외인'과 '여필종부'의 길을 거부하고 한 인간으로 당당히 살고자 했던 그녀들의 삶과 도전, 성공과 좌절은 남녀평등사회라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책 자체가 현대여성들의 달라진 사회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도발인 셈이다.

허윤희 기자 ostinato@chosun.com

개혁과 갈등의 시대: 정조와 19세기 / 유봉학 /신구문화사

정조의 죽음으로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는 좌절됐을까.

조선말 개혁 군주의 표상이었던 정조의 죽음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정적으로 알려진 노론 벽파의 실력자 심환지와 정조가 빈번하게 교류했다는 사실이 최근 발견된 ’정조어찰’을 통해 드러났지만, 여전히 그의 ’죽음’은 미궁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유봉학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된 ’개혁과 갈등의 시대: 정조와 19세기’(신구문화사 펴냄)를 통해 소설, 영화 등에 빈번히 등장하는 ’정조 독살설’을 일축한다. 또한 정조 사후 세도정치가 횡행하면서 정조의 개혁 작업이 중단됐고, 이로 인해 조선사회는 보수반동으로 치달았다는 주장에도 선을 긋는다.

저자는 “정조가 진보적 사상을 가진 소수의 시파와 남인 실학자들과 함께 개혁을 추진하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는 설정은 사도세자와 정조, 시파, 남인을 선(善)으로 전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정조가 집권 후기 들어 화성 건축과 같은 무리한 토목공사와 왕권 강화 정책을 추구하면서 지지세력으로부터 신망을 잃기 시작했고, 이로 인한 실망과 갑작스런 병마때문에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실제로 정조가 추구한 왕권강화 정책은 시대 분위기와 역행하는 일이었다. 당시 노비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고, 양반조차 생산활동에 종사해야 할 처지에 놓이는 등 전통적 신분제가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를 암살한 노론 벽파가 정조 사망 후 정국을 주도하면서 세도정치를 이끌었다는 주장도 잘못된 상식이다.

1800년 정조 서거 후 노론 벽파가 정국을 주도한 기간은 단 5-6년뿐이었다. 1806년 벽파를 일망타진하고 나서 집권한 세력은 정조가 키워낸 시파 관료들이었고, 그들은 그후 약 60년간 세도정치라는 이름으로 조선 땅을 지배했다.

즉, 세도정치를 이끈 김조순, 남공철, 심상규, 이만수, 서영보는 정조가 가장 아끼던 최측근으로서 한때 신학(新學)과 신문(新文)에 지나치게 기울었다며 정조로부터 견책을 받기도 했던 ’북학’의 선두주자였던 것.

저자는 “정조 사후 조선의 상황이 정조시대의 개혁과 긍정적 분위기를 완전히 거슬러 보수반동의 길로 치달았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조의 의도대로 (세도정치가들이) 조선사회를 이끌지는 않았을지라도, 19세기 세도정치기의 역사는 정조시대와의 단절이라기보다 대체로 그 연장 선상에서 전개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조 시대의 자주적 근대화 노력이 정조 사후 좌절됨으로써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었고, 외세의 침략을 자초했다는 설명은 식민사관에 근거한 오류일 뿐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다만 저자는 정조가 말년에 군주의 초월적 지위를 강조했고 이 같은 그의 정책은 변화하는 조선 사회의 정치적 저항을 받았다면서 “결국 정조는 (이런 난국을 타계하기 위해) 신임이 두터웠던 김조순에게 아들에 대한 보좌와 정국주도를 당부함으로써 외척이 주도한 세도정치의 단서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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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di 3 mars 2009

촛불집회와 한국사회 / 홍성태 외 / 문화과학사

촛불집회와 한국사회 = 홍성태 외 지음. 촛불집회와 관련, 지난해 학술지나 계간지에 발표된 글 8편과 미발표 논문 1편을 묶었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건 '촛불집회와 10대 참여자들의 사회적 특성'을 분석한 고려대 김철규 교수의 논문.

지난해 계간지 '경제와 사회' 겨울호에 실렸던 이 논문에서 김 교수는 김선업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 연구교수 등 2명과 함께 작년 6월14일에 있었던 촛불집회에 참가한 10대 참가자 333명을 분석했다.

분석결과, 성별로는 전체 참가자 중 여학생(70.4%)의 비중이 남학생(29.4%)을 크게 웃돌았고, 학년별로는 고등학생(66.2%)이 중학생(33.8%)보다 2배가량 많았다.

계층별로는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답한 학생이 59.0%로 가장 많은 가운데 중하층(19.6%)과 중상층(16.5%)이라고 밝힌 답변이 뒤따랐다.

김 교수는 "촛불집회 참가학생들은 연예인보다는 사회현실, 정치적 현안 등에 관심이 높았고, 적어도 촛불집회에 자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은 이미 이전에 다른 단체나 집회 활동을 경험했던 학생들이었다"고 밝혔다.

이밖에 미발표 논문인 '촛불집회와 정체성의 정치'(최현.제주대)를 포함해 '촛불집회와 신자유주의'(강내희.중앙대), '촛불집회와 민주주의'(홍성태.상지대), '촛불집회와 10대 참여자들의 주체형성'(이해진.한국청년정책연구원) 등의 글이 실렸다.

전쟁이 만든 나라, 북한의 군사 공업화 / 기무라 미쓰히코, 아베 게이지 / 미지북스

1945년 해방에서부터 한국 전쟁 직전까지 북한의 공업화에 대한 국내의 연구는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중후반에 북한의 본격적인 공업화가 시작되는 것으로 전제하면서 논의를 진행해왔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개된 자료나 발굴된 자료가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북한 연구 현실에서, <전쟁이 만든 나라, 북한의 군사 공업화>는 일본의 기업사 자료, 북한의 자료, 소련의 자료, 최근 공개된 극비 문서 등을 통해 1910년부터 1954년까지 북한 지역의 ‘공업화의 역사’를 ‘기술사(技術史)’의 측면에서 살펴봄으로써, 식민지 근대화 논쟁이 발전적, 생산적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전편에서는 1910~1945년, 즉 식민지 시기의 공업과 공장의 실태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식민지 공업화론에서 경시되거나 무시됐지만 북한 지역 연구에서 빠질 수 없는 광업 부문을 비롯하여 금속 기계 공업, 화학 공업, 섬유와 식료품 등 경공업 등을 차례로 살펴보고, 보론을 통해 식민지 시기 북한의 공업화에 관련된 주제들, 즉 인프라(전력, 철도, 항만), 기술자, 남한의 공업화를 검토하고 있다.

후편에서는 1945~1950년, 해방 이후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일제 붕괴 직후 북한에 남아 있던 구(舊)일본 기업에 어떠한 물적 손실이 발생했는지, 스탈린의 점령 정책이 북한의 공업화를 어떻게 좌우했는지, 해방 후 공업의 재건과 관련하여 1945~1948년의 공업 실태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김일성이 전쟁을 위해 물자를 어떻게 준비했는지를 규명한다.

- CNB뉴스 , CNBNEWS - 이우인 기자 / 2009-02-22

mercredi 25 février 2009

추방과 탈주 / 고병권 / 그린비

한국사회 민주주의, 관계자외 출입금지
<추방과 탈주> 지금 한국사회를 읽다

이인 (specialin)

뉴스를 보기가 겁나는 시대입니다. 시민들이 떼죽음당하고 끔찍한 범죄들이 며칠을 멀다하고 터지고 있어요. 패러다임자체가 크게 변화하는 세계와 동떨어져서 한국 사회는 거꾸로 타들어가고 있기에 시민들은 불안합니다. 콘크리트 쏟아지는 강에 사는 물고기가 된 기분으로 참담하게 오늘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쇠고기 수입에서부터 용산참사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삶에 맞닿아있는 문제들이지만 엉뚱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전혀 시민들이 바라는 방식으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이들이 느꼈듯이 수유+너머 연구소의 고병권 철학자도 엄습하는 불길한 조짐에 거리로 나갑니다. 거기서 느낀 점을 책으로 냅니다. <추방과 탈주>[2009. 그린비]는 그 결과물로 삭막하다 못해 잔인해지는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진단합니다.


한국사회가 민주주의? 관계자 외 출입금지!

민주주의(데모스크라시)는 민중이 주인이 되어 운영하는 사회제도를 뜻합니다. 하지만 이제 민중이 없는 지배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민중을 추방하고 있지요. 이것은 민주주의가 몇 가지 제도나 장치들의 이름에 불과하며 통치기계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그럼 지금은 무엇일까요? 지은이는 귀족정이나 군주정을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고 밝혀요. 몇 몇 권력자들이나 시스템의 작동에 관여하고 있는 기술자들이 민주정이란 이름으로 귀족정이나 군주정을 시행하고 있다는 느낌이지요.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특정 분파가 민주주의를 장악하고 민주주의가 모두의 이득이 아닌, 특정 분파의 이익에만 복무한다는 거지요.

이명박 정부 아래서 이 경향은 더 노골화되었지요. 현 정부의 정책들은 입안에서 실행에 이르기까지 ‘어이, 물렀거라, MB대왕님 납신다,’를 외치며 철저히 시민들을 물리치고 계시죠. 한국 민주주의는 시민과 공권력 사이에 매개나 조정을 하기보다는 명령이나 통보 형식을 띠며 시민들의 삶에 침투해옵니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대부분 서민들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기에 공권력에 의해서 거부되고 있지요. 보통 서민이 정치에 참여할라치면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보이며 쫓아내기 일쑤지요. 시민들은 이제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 결정으로 배제되고 있지요. ‘합의로부터 배제’되고 ‘합의를 통해 배제’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10년? 그들은 같은 팀 릴레이 선수들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금융시장 개방과 노동시장 구조조정을 완수한 것은 정권을 교체한 김대중 정부였고, 노무현 정부가 완수하지 못한 한미FTA 최종 비준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역시 정권을 교체한 이명박 정부다. 서로 당파는 다르지만 흥미롭게도 그들은 신자유주의라는 하나의 트랙 위에서 바통을 후임자에게 성공적으로 건네주었다. - 책에서

지은이의 따끔한 분석처럼, 네 개의 정부 두 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음에도 신자유주의의 공세와 숙성에는 어떤 단절도 없었어요. 단지 그것을 책임지는 관리자들만 바뀌었을 뿐이죠. 지금, 이명박 정부는 전 정권에서 잘 닦아놓은 신자유주의 노선 위를 마음껏 질주하고 있지요.

한 마디로 이번 정권교체는 노선의 교체라기보다는 속도의 교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요. 지난 정부가 슬슬 눈치를 보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불도저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요. 선진국과 방향이 많이 달라 한국에서 사는 대다수 시민들에게는 ‘괴로운 역주행’이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 정부는 열심히 달리고 있어요.

정권 교체세력들은 ‘잃어버린 십 년’ 타령을 부르며 과거로 돌아가고 있지요. 하지만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났듯 황당하게도 그들은 잃어버린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오히려 그들은 ‘잃어버린 십 년’동안 그들의 주머니는 더 불룩해졌고 얼굴은 기름기로 더 번들거렸지요. 그들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 수 없었으나 십년 동안 생존의 위기로 몰린 수많은 민중들은 ‘살림살이 상실시킨 정권 타도’에 표를 몰아주지요.

그 결과는 현실에서 보시는 대로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닦아놓은 신자유주의 때문에 ‘생활 기반의 상실’이 생겨 이명박 정부를 지지한 민중들은 이제 ‘삶 자체가 상실’하게 생겼습니다. 형식상 시민권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들은 비국민들이 되어 존립 기반을 잃게 생겼습니다. 이들은 국가의 일원이지만 국민은 아닌 자들이죠.

부와 권력을 일부 집단에만 쏠리고 대중들은 주변으로 밀려나서 불안한 존재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권력과 부의 영역에서 대중들은 끊임없이 추방되었지요. 각종 양극화 지표들이 잘 보여 주고 있듯이 1997년 이후 한국사회는 권력과 자본의 핵심을 장악한 소수의 세력과 그렇지 못한 대중들로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 국가의 주인에서 추방되어 희생당하는 내부난민들

권력과 자본을 장악하지 못한 대부분 서민들이 처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용산참사입니다. “국가의 설립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야수들”이라고 니체는 말해요. 말 그대로 공권력은 갑자기 들이닥쳐 삶을 파괴하지요. 용산참사에서 볼 수 있듯이 철거민들은 국민이 아닙니다. 국가 이익에 반하는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공권력을 ‘늘 그렇게 해왔듯’ 장애물을 치워 버립니다. 사람이 죽어도 일 하다 실수한 것이기에 사과를 할 수 없는 겁니다.

모두의 이익이라며 몇 몇 예외를 희생시키는 게 상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국민 모두가 살길’이라는 식의 얘기는 ‘제발 우리를 살려 달라’는 보통 서민들의 외침을 묵살해버립니다. 자기 나라 안에 있으면서 사실상 자신을 보호해줄 정부를 갖지 못하는 이들을 ‘내부난민’이라고 지은이는 부릅니다. 몇 푼을 쥐어주면서 평생 고기잡이를 한 어민들은 쫓아내자 “아, 우리는 국가의 주인이라기보다는 국가에 빌붙어 생계를 유지하는 거지였구나. 우리는 국민이 아니었구나.”를 깨달았다고 추방당한 어부는 고백합니다.

지금까지, 안타깝게도 추방당한 사람은 이 사회의 ‘예외’이며 그들의 희생은 가슴 아프지만 전체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논리가 드셌지요. 하지만 이제 그 ‘예외’는 일상화가 되고 있고 희생은 대중화가 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예외’들을 몸으로 겪은 대중들은 자신도 언제 희생될지 몰라 불안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치면에서 보수주의가 되죠. 그들은 자기 삶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사태를 견딜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보수주의가 된다고 서민들에게 콩고물은 떨어지지 않지요. 도리어 먹음직스러운 콩고물이 되기 십상이죠. 지난 십여 년간 미적대던 중산층 붕괴는 이제 와르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사회안전망이 튼튼해서 그들을 챙겨주지도 않죠. 우선 한국에서 복지국가라는 말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었으니까요.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성장해 온 신자유주의는 잠복기간을 마쳤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드디어 사회 곳곳에서 발병을 일으켰고 시민들은 불행한 결과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앓기 시작했지요. 공권력이 ‘시장에 대한 개입’은 줄어들었을지 모르나 ‘시장을 위한 개입’은 훨씬 더 강화되었습니다. 용역을 위해 물대포를 쏘는 경찰이 이를 말해줍니다. 시민들은 자신의 몸을 삽시간에 갉아먹는 질병에 죽음의 공포를 느꼈기에 거리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 분노가 거리에 쏟아집니다. 정부 정책에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보통 서민들은 원치 않은데 ‘국익’이란 이름으로 쇠고기를 수입하겠다고 했지요. 도대체 국익은 누구를 위한건지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않았던 시민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촛불을 듭니다. 그들은 정부가 하는 일 때문에 불안해지고 가난해지는 사람들이지요. 작년 촛불시위는 왕따 당한 민중의 분노였습니다.

촛불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정부, 오로지 규제와 탄압

촛불들은 스스로 불안에 떨면서 동시에 권력자들을 불안케 했지요. 정부는 촛불을 이해할 능력이 없고 이해할 생각도 없기에 그저 광우병에 놀아나는 ‘멍청한 대중’으로 취급됩니다. 정부에서는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들의 말을 이해할 자세가 안 되어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정부는 대중들의 주장을 괴담으로 움직임을 난동으로 부릅니다.

하지만 촛불을 든 대중은 힘이 있었고 정부는 촛불에 뎁니다. 데었으면 현실에 맞도록 법을 개정하거나 정신을 차리고 시민들 눈높이로 자세를 낮춰야 하는데, 그들의 뇌회로는 다른 방향으로 굴러갑니다. ‘알 수 없는 적’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힌 나머지 감시와 처벌, 통제하는 법을 계속 만들어 내려 합니다. 법과 질서를 지키면 국민 총생산이 1%올라갈 수 있다며 취임순간부터 법질서를 강조하였던 분답지요.

군사정부 시절의 백골단을 연상시키는 체포전담반, 시위진압 경찰은 면책하고 시위대는 법을 개정해서라도 사법처리하겠다고 합니다. 도대체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중들을 옭아매고 탄압만 하겠다는 위정자들의 인식능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규제 철폐와 정부 축소를 외치는 정부는 강력한 법치주의와 치안강화를 주장하는 걸까요.

바로 신자유주의가 퍼뜨린 불안 때문이죠. 안전을 욕구하는 건 불안하기 때문이죠. 안전보장은 이 시대에 고유한 불안과 맞닿아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자본을 탈규제 시켜주어 대중들을 시장의 무차별 폭력 속에 방치시키는 결과를 낳았지요. 그렇게 태어난 불안한 대중은 이제 관심 밖 난민이 되었지요. 정부는 그들의 복리나 안전에 관심을 두기보다 그들을 치안관리대상으로 여깁니다. 용산철거민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세요.

대중을 이해하지 않겠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제, 정부는 위협의 내용이 분명한 국방보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생겨날지 모르는 내부 저항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안전보장개념이 중요해지는 거죠. 이명박 정부는 행정자치부의 이름을 행정안전부로 바꾸었습니다.

악은 무개념에서 나온다, 생각하라, 그리고 탈주하라!

IMF이후 보통명사처럼 널리 퍼진 구조조정은 현재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 넘어가기 위한 중간 과정이란 뜻입니다. 안정된 사회구조로 옮겨나는 과정에 고통스러운 때지만 이 기간은 잠깐에 지나지 않는 ‘예외시간’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하지만 착각이지요. 이미 예외성은 일상성이 되었고 구조조정은 하나의 구조가 되어 한국사회에 들어앉았고 서민들의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기에 늘 고통스럽고 불안한 겁니다.

판단중지, 잠시 생각을 멈춰봅니다. 지금까지 생각하고 살아왔던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인식과 삶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저 구조조정이 되어버린 나날을 보내면서 고통과 불안에만 시달릴 수 없습니다. 이제 스스로 자기 삶과 인식을 구조 조정해야 합니다. 구조조정당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바꿔나가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주어진 삶’에 충실할 뿐이라며 핑계를 대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주어진 대로 순종하다보면 언젠가 해뜰날도 오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유대인 학살혐의로 재판정에서 아이히만은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변명을 하였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은 나쁜 생각에서가 아니라 생각 없음에서 나온다’며 호통을 치지요. 일출은 스스로 고통스런 새벽을 견뎌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겁니다.

대중들의 삶이 불안정에 시달릴 때 일부는 막대한 부를 긁어모았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도 언젠가 한 몫 잡고 싶은 욕망에만 들떠 있어 자신을 포함하여 불안정에 시달리는 대다수 서민들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부자아빠와 가난한 아빠라는 상반된 운명은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전자에게 일어난 일과 후자에게 일어난 일이 동일한 이유 때문입니다. 예전처럼 혼자 열심히 한다고 부자가 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 책 제목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추방, 그것은 지난 10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줍니다. 그렇기에 추방당한 서민들과 추방위협에 시달리는 대중들은 현정부와 ‘저강도 내전상태’에 있는 겁니다. 탈주,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낌새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요동치며 죽음으로 내달리는 고장난 폭주열차입니다. 이에 시민들은 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괜찮아, 아프지만 다 잘 될 거야, 최면 걸며 자위하다가 강제추방 당할 건지 스스로 탈주를 할 건지 책은 묻습니다.

출처 : 한국사회 민주주의, 관계자외 출입금지 - 오마이뉴스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조선시대 군대 연구에 귀중한 사료

정조가 노론 벽파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가 9일 공개돼 학계와 일반인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정조가 정치적으로 갈등관계에 있었던 벽파의 영수에게 비밀편지를 보낸 것 자체가 이색적인 데다 비속어를 거침없이 사용하는 정조의 문장 어투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정조는 비밀편지를 매개로 심환지와 강한 인간적 유대관계를 맺고 이를 기초로 벽파 내부의 동향을 파악하거나 벽파의 움직임을 제어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편지로 정조 이산은 유교적 성군보다 노회한 현실 정치가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정조 이산의 이 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또 다른 일화가 있다. 1793년 8월 12일 정조는 당상선전관이었던 노상추(1746~1829)에게 밀명을 내린다. 당상선전관은 국왕의 고급 전령 겸 호위무사 기능을 겸하는 무겸선전관 중에서도 정3품 이상의 고위급 선전관을 의미한다.

이런 중대한 직책을 맡고 있는 노상추에게 맡겨진 임무는 어이없게도 왕실 제사를 비밀리에 감시하는 것이었다. 정조는 노상추에게 세종과 효종의 왕릉 앞에서 시행되는 제사에 사용되는 음식은 깨끗한지, 행사는 엄숙하게 진행되는지를 몰래 감시할 것을 지시했다.

명령에 따라 노상추는 8월 14일 영릉에 도착, 사복 차림으로 제사 음식 등을 살펴본 후 마치 암행어사처럼 “출도야”를 외친 후 공식적으로 제사 현황을 검열한다. 심지어 정조의 밀명에 따라 제사 음식 중 일부를 궁궐로 가지고 돌아오기도 했다. 권력자로서 정조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비화는 노상추가 18세부터 84세까지 70년 넘게 쓴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에 기록돼 있다. 경북 선산의 명문 집안에서 태어난 노상추는 1차 시험인 초시 네 번, 2차 시험인 복시에서 한 번 떨어지는 등 무려 10년에 걸친 도전 끝에 1780년 무과시험에 합격한다. 이후 노상추는 국왕 경호대인 금군, 궁궐 수비 책임자인 오위장 등으로 오랜 무관생활을 이어 간다.

이후 삭주부사 등 지방관을 거쳐 66세이던 1811년 가덕첨사까지 역임한다. 노상추의 기나긴 일기 중 절반이 이 같은 그의 군생활을 기록한 것이다. 그의 일기에는 거의 30년에 가까운 군생활의 나날들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금군 때는 국왕 경호를 위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경계근무를 섰는지를 설명할 정도다.

장교들의 능력 평가를 위해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활쏘기의 성적이나 발령이 잘 나지 않았을 때 인사 부탁을 하는 과정까지 솔직히 기록돼 있다. 너무나도 방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 노상추일기는 지금까지 양반들의 사회생활을 연구하는 자료로 주로 이용돼 왔다. 하지만 노상추가 무관이라는 점에서 그의 일기는 조선시대 군대연구에도 큰 가치가 있는 사료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정해은 박사는 지금까지 사학계에서 문신들을 중점적으로 연구해 왔지만 앞으로는 무신들의 중앙관료 생활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며 노상추일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노상추일기의 원본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2005년 현대 인쇄본(사진)으로 재간행됐다.

[국방일보] 김병륜 lyuen@dema.mi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