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redi 12 novembre 2008

Exodus to North Korea: Shadows from Japan's Cold War/ Haeng-Ja Sachiko Chungal

Exodus to North Korea: Shadows from Japan's Cold War. By Tessa Morris-Suzuki. Lanham, Md.: Rowman & Littlefield / Haeng-Ja Sachiko Chungal
a1 Hamilton College/University of Tokyo, 2007. xi, 291 pp.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2008), 67 : 1480-1482 Cambridge University Press

사회 변동과 한국 가족법, 나남 / 김성숙

가족법을 중점적으로 연구해 온 김성숙 (사진) 숭실대 법과대 교수가 지난 26년 동안 쓴 논문을 엮은 ‘사회 변동과 한국 가족법’(나남)을 최근 펴냈다.

김 교수는 한국가족법학회 회장,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 등을 지낸 가족법 전문가다. 각각의 논문에서 그는 혼인과 약혼에 대한 법규, 재산분할제도 등 가족법 전반을 주제별로 다루고 다양한 외국 사례를 들어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가 논문에서 지적한 문제점을 보면 혼인, 이혼, 상속 등에 대한 논문 발표 당시의 사회적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이후 문제점이 개정된 법규에 대해선 각 장의 ‘후기’에 개정 내용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가족법은 시대 변화에 따라 개정돼 왔지만 아직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수용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서 “특히 독신가족, 한부모가족, 미혼모가족 등 새로운 개념의 가족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법률혼 외의 동거관계를 혼인으로 인정할 것인지의 문제, 인공수정자의 친생 추정을 비롯해 생명공학의 발달로 야기되는 여러 가지 법률적 문제 등 가족법에서 검토해야 할 새로운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lundi 10 novembre 2008

‘손에 동전 한 푼 없다’ 징징거린 조선 양반들 - 중앙일보 / 2008-11-8

하영휘 선생의『양반의 사생활』(푸른역사, 2008)은 1800년 서울에서 태어나 충청도 남포현 삼계리(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충남 보령시 미산면)에서 몰한 조병덕(趙秉悳)의 삶을 재구성한 일종의 전기다.

조병덕은 조선시대를 쥐고 흔든 노론(老論) 화족 가운데 하나였던 양주(楊洲) 조(趙)씨, 괴산(槐山)공파의 일원이었다. 그는 같은 집안의 아저씨뻘로 철종(哲宗)과 고종(高宗)대에 삼정승을 두루 거치며 노론 종주로 활약했던 조두순(趙斗淳)과는 대조적으로 과거나 벼슬을 일절 하지 않았지만, 살아생전 ‘산림(山林) 어른’으로 존경받았다.

조선 후기에 살았던 한 양반의 전기를 구성하기 위해 저자는 약간 특별난 방법을 이용했다. 조병덕은 28년간 자신의 장남에게 무려 1700여 통의 길고 짧은 편지를 썼고, 저자는 자신이 재직하고 있던 ‘아단문고’에 상자째 쌓여 있던 고문서 더미 속에서 이 편지 뭉치들을 발견했다. 어찌 보면 저자가 특별난 방법을 이용하고자 했던 게 아니라 누구에게도 공개되기를 원치 않았던 한 양반의 사신(私信)이 150여 년 세월을 기다려 ‘임자’를 찾았던 거라고나 할까.

“고문서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건 대학 시절부터였습니다. 1980년대엔 마르크스주의 영향이 강해서 늘 역사 발전 법칙 속에서 한국 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논쟁하곤 했죠. 그런데 그런 도식으로는 도저히 조선시대를 모르겠더군요. 다행히 졸업 후 89년부터 몸담게 된 직장에서 조선시대의 고서와 고문서를 원 없이 읽게 되었습니다.
요즘 나오는 대중 역사서나 영화·드라마 등이 『조선왕조실록』에서 많은 자료를 취재하고 있지만, 그건 원래 국가 기록이라서 관점 자체가 정치를 중심으로 삼고 있고, 사적인 내용도 말소되어 있습니다. 이번 책에서 시도한 일상사는 사적 자료·일기·편지와 같은 고문서가 발굴되고 읽을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일상사적인 방법을 통해 역사의 사실과 진실에 접근해 보고 싶었다는 저자에게 1700여 통이나 되는 조병덕의 사신은 그야말로 축복에 가까웠다. 앞서 언급됐던 『조선왕조실록』은 물론이고 문집의 편집 과정에서 또 한번 걸러진 대부분의 정통적(orthodox) 자료에서는 유교 도덕과 명분으로 도배된 양반의 공적 영역만 전해진다.

반면 조병덕의 편지는 조선시대 양반이 남에게 보이는 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여겼던 몇 가지 사항 가운데 특히 금전거래에 관한 기록이 상당량을 차지한다. 저자가 편지의 “솔직함에 빠졌다”고 토로하는 것과 반대로, 편지의 주인이 “이 편지는 반드시 즉시 태워야 한다”는 조바심을 말미마다 적은 까닭은 그 때문이다.

조병덕은 생계를 위해 책을 판 일이 적지 않았고, 오늘날의 택시비인 가마비를 아끼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어쩌다 손님이 갑작스레 닥치면 자신의 밥그릇에 행주를 깨끗이 빨아서 넣고 그 위에 쌀밥을 덮어야 할 정도였으니,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유력한 친척들에게 구걸을 하는 일은 당연했다.

그는 첫째 아내가 죽자 장인에게 “죽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것이 산 사람 고생보다는 유쾌할 것 같습니다”라고 썼으며, 둘째 부인이 죽자 묏자리를 구하지 못해 남의 산에 투장까지 했다. 조병덕이 편지에서 자주 사용한 관용구는 “손에 동전 한 푼 없어 꼼짝달싹 못한다”란 말이었다. 양반의 치부는 그뿐이 아니었다.

그의 큰며느리는 새로 맞은 시어머니를 쫓아내 부부가 살 집을 새로 지어야 할 정도였으니, 가장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거나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편지에 “다만 높이 날아 멀리 달아나 집에 있고 싶지 않을 뿐이다”고 그는 썼다.

“조병덕의 삶은 중앙지향적이었던 기호지방 양반의 일반적인 사례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영남지방은 중앙 진출이 좌절되면서 지역 내의 양반이 여러모로 결속해 유교적 도덕에 의한 가부장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기호지방의 양반들은 삼대 동안 과거에 붙지 못하면 몰락을 면치 못했습니다.

거기다가 조병덕이 살았던 시절은 장동 김씨가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 국면에 들어서면서 권력을 공유하던 노론 집단의 동류의식이 무너지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양반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유교적 가부장 사회는 조선시대를 이상적인 유교사회로 포장하려는 경향의 산물이고, 선비문화 역시 후대의 투영물입니다. 그들은 이슬을 먹는 신선이 아니었습니다.”

조병덕은 지방의 서원 세력을 향반으로 여기면서 거리를 둘 만큼 중앙지향적이었지만, 임금이 두어 차례 벼슬을 주었음에도 고향에서 나가지 않았다. 벼슬 받고 서울에 올라가 봐야 권한을 갖거나 인정을 받기 어려웠고, 굶어 죽더라도 산림으로 있어야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재 미나게도 조병덕은 스스로 “정주(程朱) 이후로 의리가 밝혀져 남김이 없기 때문에 후학은 단지 받들어 믿고 토론하여 밝힐 뿐이다”고 말한 것처럼 변변한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저자는 “저술을 추구하지 않는 유학의 한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고 귀띔한다.

“1700 여 통의 사신은 양반들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생활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사회적·경제적 특성을 엿보게 해줍니다. 조선 사회는 지연·학연·인척·과거 벼슬을 통해 많은 관계를 만들려고 하고 유사시엔 그 관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왕래망(往來網) 사회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전통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고스란히 남아 있죠. 또 조병덕은 가렴주구를 비난하면서도 벼슬에 나간 자제배들로부터 명목전을 거두는 것을 당연시했습니다.

그건 용인된 뇌물이기도 했고, 상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혜와 복종으로 유지되는 ‘도덕 경제’의 일면이기도 했습니다. 이 또한 오늘의 한국 경제에서 흔히 찾아지는 특성입니다.”

조 병덕은 평생 ‘밭 가는 유학자’를 자처하며 ‘조경모독(朝耕暮讀)’과 ‘비기력불식(非其力不食)’을 실천하고자 했으나, 문자 그대로 한 번도 밭을 가는 일을 실천하거나 자신의 힘으로 먹지 못했다. 그를 먹여살린 것은 임지에 나간 자제나 인척들에게서 거둔 명목전이었고, 그 명목전은 백성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양반들을 굳이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쌀 직불금을 허위 수령한 요즘의 불한당이라 할 것이다. 사진 신인섭 기자


‘장 작가’란 줄임말로 불리는 장정일씨는 시인·소설가·희곡작가·책 평론가입니다.


장정일<9571@joongang.co.kr>

민족주의는 한국사회의 문제아인가 - 프레시안뉴스 / 2008-10-30

민족주의는 한국사회의 문제아인가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63>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① 2008-10-31 오후 3:11:13 강철구/이화여대 교수

민족주의로부터의 탈주

민 족주의는 10여년전만해도 한국인들의 마음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대의(大義)였다. 민족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잘 모르기는 해도 누구나 그것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당시만 해도 민족이나 민족주의라는 말에는 약간 성스러운 분위기조차 있었으므로 대놓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민족주의를 비판 내지 공격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지식인들 가운데에는 노골적으로 민족주의에 반대하고 민족주의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아가 '민족주의는 반역'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또 이에 영향을 받은 많은 일반 청년남녀들도 민족주의가 불편하다고 말한다. 민족주의가 전쟁과 종족학살, 외국인 차별을 가져오는 비윤리적인 이념인 만치 어쩐지 받아들이기에 거북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족주의는 오늘날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이데올로기로, 낡은 유물 취급이나 받으며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너도 나도 민족주의 비판 대열에 서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조급증을 보인다. 약간이라도 민족주의 냄새가 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시비의 대상이 된다. 2002년 월드컵 때 젊은이들이 붉은 악마 옷을 입고 일사불란한 응원을 벌이자 일부 성질 급한 사람들이 이를 파시즘으로 몰아 붙였을 정도이다. 당시의 응원이 유별나기는 했으나 그래도 그렇지 파시즘이라니? 독재자도 없고 선전, 선동도 없는 파시즘이라는 것이 있단 말은 금시초문이다

황우석 신드롬도 비판의 대상이다. '경제지상주의, 국가주의 등 민족주의의 모든 부정적 요소들이 결합하여 나타난 그것은 민족주의의 맹목성과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불치병 환자들의 가족이 황우석씨의 주된 지지자라고 들었는데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민족주의와 그렇게 큰 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또 작년에는 지금까지 그 이름에 민족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온 듯한 민족문학작가회의라는 작가 단체가 그 이름에서 민족을 쏙 빼버렸다. '민족'이 이제 철지난 단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단체도 유행을 타는 모양이다. 가위 민족이나 민족주의로부터의 탈주라고 할만한 일이다.

일부 비판적인 역사학자들은 국사 서술에까지 칼을 들이대고 있다. 지금까지의 우리 국사 책들이 너무 민족주의적으로 서술되었으므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국사를 해체하라는 것이다.

언 론들도 이런 움직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파신문이고 좌파신문이고 마찬가지이다. 좌파신문이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그렇다 해도 우파신문이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좌파 지식인의 글을 실어주는 파격을 보이기까지 한다. 민족주의만 비판하면 된다는 식이다.

2007 년 12월에 한겨레신문에서는 민족주의에 대한 지상논쟁을 마련했다. 여러 명의 학자들이 나와서 자기 나름의 소신을 피력했다. 그런데 여섯 명의 참가자 가운데 민족주의를 옹호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다른 한 명은 좀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나머지 네 명은 대체로 민족주의를 용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그 논쟁의 주제가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인 모양인데 참가자들의 구성을 그렇게 짠 것을 보면 신문사측에서는 민족주의가 유효하지 않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 버린 것 같다.

민족주의가 비판받는 이유들

그러면 민족주의가 이렇게 갑자기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최근 들어서 부쩍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같은 지구화의 영향을 들 수 있다.

20 세기 후반에 전 세계적인 산업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지구가 과거보다 상당히 좁아졌다.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이나 장거리 전화, 또 위성 TV같은 새로운 매체를 통해 지구가 점점 하나의 조밀한 망으로 짜여지고 있다. 항공산업이나 해운산업의 발전으로 국제적인 인적, 물적 교류도 크게 늘었다. 그러니 얼핏 생각하면 지구가 하나가 되고 있다는 미국 지구화론자들의 주장이 먹혀 들어갈 소지가 크다.

이런 생각의 변화에서 한국은 특히 돋보이는 나라이다. 외환위기 이후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마치 점령군처럼 진주하며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금융을 자유화하여 가능한 한 외국자본을 많이 들여오고 시장개방을 확대하여 외국 상품을 많이 사서 쓰고 젊은 사람들이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고 글로벌 인재가 되는 것이 절대명제가 되었다.
10 년 동안 쓸개 빠진 지식인들이나 관료들, 언론이 계속 그렇게 떠들어 대고 국민들을 오도했으니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이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민족주의를 마치 지나간 시대의 쓰레기쯤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공산권 붕괴 이후 구 소련지역이나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벌어진 민족분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보스니아에서의 종족적 대량학살은 대규모의 유혈사태를 가져왔다. 러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체첸인들의 독립전쟁도 그 원인이야 어쨌든 종족이나 민족분쟁을 유혈과 연결시키는 나쁜 선입견을 심어주는데 기여했다

국내 정치도 한몫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하에서 우익세력은 계속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해 왔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훨씬 심했다. 북한에 대해 경제 원조를 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반면 미국을 멀리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서 사용하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표현을 끄집어내며 끊임없이 민족주의를 헐뜯고 조롱했다. 민족주의를 세계의 흐름과 동떨어진 폐쇄적인 이념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매우 정략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영향은 학문세계에서 비롯했다. 1980년대 이후 서양에서 '근대주의적 해석'이라는 민족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며 기존의 민족주의 이론들을 완전히 압도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90년대에 번역서들을 통해 한국에도 전파되며 민족주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만들어 냈다. 한국에서 민족주의와 관련해 가장 많이 읽히는 에릭 홉스봄의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해석에 따르면 민족은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들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다. 또 우리는 보통 우리 민족이 5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믿어 왔는데 이들은 민족이라는 것의 역사가 고작 200년 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 우리는 상식적으로 민족이 먼저 있고 나서 민족주의가 나중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해 왔는데 이들은 반대 입장을 취한다. 민족주의가 민족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이 이렇게 지배계급에 의해 대체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으니 그 성격도 억압적이고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영토내의 소수 종족들을 억압하고 이웃 나라를 공격하고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지구화 시대이다. 국경의 문턱이 낮아지고 모든 나라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시대이다. 수많은 국제기구나 유럽연합 같은 것이 이미 그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민족국가는 멀지 않아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만약 근대주의적 해석의 이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민족주의를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민족주의로부터 탈출하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근대주의적 해석은 유럽중심적인 해석

그 러면 '근대주의적 해석'이라는 것이 그대로 받아 들여도 좋은 이론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상당히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근대주의자들은 민족을 18세기 말이나 19세기 초에 들어와 산업화나 자본주의의 발전,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실상 이미 16세기에 영국에서는 오늘날과 거의 같은 의미로 민족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또 17, 18세기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민족주의가 patriotism(애국주의)이라는 단어로 이미 나타난다. 산업화나 자본주의, 근대국가는 이런 경향을 촉진시킨 것이지 그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이 점에서 비역사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이들은 민족이 인위적으로 지배계급의 '사회공학'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나 실제로 민족의 본질은 언어, 종족성, 역사, 관습, 종교 같은 객관적 요소들이다. 특히 종족성이 중요하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왜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이나 캐나다에서 아직도 종족적 분리주의가 힘을 얻고 있는지 설명 할 수 없다. 또 구소련 지역에서 사라진 것 같았던 민족주의가 왜 폭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 들은 민족주의를 전체적으로 비판하기는 하나 그래도 서유럽의 민족주의와 동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민족주의를 구분한다. 전자를 시민적 민족주의로 좋은 것으로, 후자는 종족적 민족주의로 나쁜 것이라고 규정한다. 전자는 합리적 평화적이고, 후자는 혈통에 의존하여 맹목적, 파괴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서유럽의 민족주의도 실제로는 종족성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이런 구분은 정도의 차이일 뿐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은 식민지에서 벗어나서 독립을 쟁취하려 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민족주의를 매우 과소평가한다. 그래서 이 지역의 민족해방운동을 서양 교육을 받은 인텔리겐챠들이 무식한 대중을 선동한 결과로 본다. 이 지역에서는 산업화나 자본주의, 공공교육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전통사회의 문화능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근대 서양만이 문화능력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들은 민족주의를 주로 내부적인 억압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한다. 그래서 민족주의를 비윤리적인 이데올로기로 폄하한다. 자기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강대국들이므로 외부세계를 크게 의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 속의 민족주의는 대외적인 경쟁과 억압, 저항을 통해 나타나고 성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외부적 억압에 저항해야 하는 민족이나 나라들에게는 아직도 큰 도덕적 정당성을 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제3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의 경우 특히 그렇다. 그러한 경쟁과 억압이 사라지지 않는 한 민족주의도 사라지기 어렵다.

이들은 지구화 때문에 민족주의의 남은 생명이 얼마 안 된다고 주장하나 지구화가 그렇게 절대적인 과정은 아니다. 지금의 지구화는 세계적인 정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다. 만약 지금의 금융위기가 경제공황으로 발전한다면 지구화는 크게 후퇴할 것이고 나라마다 문을 걸어 잠그게 될 것이다. 또 지금의 지구화는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 이런 불평등한 형태의 지구화가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위 의 이야기로 근대주의적 해석이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유럽중심주의적인 이론으로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또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이론이다. 그럼에도 이런 이론이 우리 사회에서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우리 지식인들이 서양이론에 대해 별로 고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양 이론을 보편이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래서 근대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공동체'니 '발명된 전통'이니 '사회공학'이니 하는 단어들이 지식인들의 상투어가 되어 있고 민족주의는 모든 악덕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서양 강대국들 사람들의 입장과 한국인의 입장이 같을 수 있는가. 한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도 있으나 정말 그런가. 우리가 요사이 또 다시 외환위기의 악몽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은 이렇게 고민하지 않는 우리 지식인들, 정치인, 관료들이 우리에게 바친 기막힌 선물 덕택이다

[BOOK책갈피] 20년 만에 재출간된 ‘운동권 바이블’ - 중앙일보 / 2008-10-31

[BOOK책갈피] 20년 만에 재출간된 ‘운동권 바이블’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증보판) / 이진경 지음, 그린비, 432쪽

 1980년대 말 운동권의 이론서였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약칭 ‘사사방’)이 20여 년 만에 ‘증보판’으로 재출간됐다. 87년 첫 출간 당시, 진보적 학계와 운동권 사이에서 치열했던 사회구성체 논쟁의 판을 뒤흔들었던 문제적 저작이었다.

사회구성체 논쟁이란 한국사회의 기본 성격을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로 보느냐, 식민지반봉건사회로 규정하느냐 등을 놓고 벌어진 싸움이었다.

단순히 학술 논쟁이 아니었다. 당시 운동권은 한국 사회의 성격 규정에 따라 운동의 방법론도 민주주의 혁명인지, 사회주의 혁명인지가 달라진다고 보았다. 당시로선 대단히 ‘실천적’인 이론 투쟁이었다. 그 핵심적 논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사방’이 ‘전설’이 돼버린 것은 저자가 당시 24세의 대학원생이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증보판’ 형식으로 다시 나온 이 책은 87년의 ‘사사방’ 원본에 저자가 최근 새로 쓴 4편의 논문과 에세이를 덧붙였다. 새 이론에는 그가 모색해온 새로운 ‘코뮨주의(=공동체주의)’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저자 이진경(45·본명 박태호) 서울산업대 교수는 “80년대의 사유는 현실 문제에 대한 강력한 긴장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긴장감은 지금도 내 사유를 추동하는 힘이다”고 말한다.

이론이 저자의 ‘호구지책’으로 전락할 때 현실과의 긴장감은 떨어지며 제대로 된 성과를 가져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80년대 사상계의 ‘핫 이슈’였던 사회구성체 논쟁은 여전히 이 사회에 대한 현실적 사유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입장이다. 사회구성체론은 사회에 대한 정태적 분석틀이나 목적론적 세계관이 아니라 동적인 생성·변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구성체 논쟁이 지금에 와서 흥미로운 점은 80년대 초반까지 ‘진보 진영’에서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주장했던 안병직 교수가 현재 뉴라이트 진영의 대부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라이트(우파)가 강할 때 레프트(좌파)도 강해진다. 좌·우의 싸움이 서로 밀고 밀리는 ‘제로섬 게임’일 것 같지만 강자끼리 겨룰 때 양쪽의 역량이 강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현재 한국의 뉴라이트 이론은 종래 미국의 올드 라이트가 가졌던 단순한 근대화론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배노필 기자

"'나쁜 여자'를 강요하는 세상…당신은?" - 프레시안뉴스 / 2008-10-31

"'나쁜 여자'를 강요하는 세상…당신은?" [철학자의 서재] <김신명숙의 선택> 2008-11-01 오전 9:53:16

왜 '선택'인가

뒤늦은 호들갑인양 며칠 전 '알파걸'(, 2008년 10월 21일)이 방영되었다. 이미 김신명숙이 <김신명숙의 선택> 책머리에서 언급한 바대로, 알파걸이란 "학업과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자를 앞서는 것"을 의미한다.

방 송에서 언급했듯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우수한 성적을 보이거나 전교회장이나 반장이 여학생인 경우는 이제 더 이상 화젯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심지어는 여자아이들 등쌀에 남자 아이들이 기를 못 편다는 부모들의 하소연까지 나올 정도라니, 정말 이렇게 '여풍'이 거세지다가는 세상 뒤집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김신명숙은 알파 걸들이 알파 우먼으로 향하는 행로에는 가부장제라는 오래된 미로가 놓여있다고 강조한다. <선택>이 줄곧 겨냥하는 핵심이자 극복해야 할 근본적 장애가 바로 가부장제다. 말하자면 "한국 여자들의 삶을 규정짓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김 신명숙은 이 책에서 여성들이 이 땅에서 겪어왔고, 겪고 있는 가부장적 질곡의 외화된 형태들을 아주 구체적인 예화를 시작으로 친절하게 풀어 나가고 있다. 저자의 방법은 제목에서부터 격렬함을 보여 주었던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식이 아니라, 거의 모든 페미니즘의 시각을 동원해서 문제를 진단하고, 절절히 가슴에 와 닿게 하는 사랑의 메시지를 통해 '여성적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연대적 실천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 책은 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들은 익히 우리가 접하고 있거나 고민해본 경험들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현재에도 우리들에게 유효한 만큼 저자가 예시한 문제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실존적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선택'은 가부장제에 의해 길들여지길 거부하고 주체적인 당당한 여성인 "나쁜 여자"가 되는 길이다.


아직도 '가부장제'인가

왜 나쁜 여자이어야 하는가? 가까이는 우리가 접하는 언어로부터 자본주의적 기제까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의 삶을 살아야 하는 '여자의 일생'이 나쁜 여자이게끔 한다. 저자가 잘못된 언어 이데올로기에 주목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언어는 의식을 담는 그릇이다. 잘못된 언어는 선입견이나 편견을 만들어 낸다. 예컨대 '예쁘지도 않은 게' 자기주장만 하는 "드센 여자"라는 말에는 이미 한국 사회의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나 관념이 담겨 있다. 방송도 얼짱, 몸짱, S라인 등의 유행어를 서슴지 않고 만들어 냄으로써 "외모가 권력이자 재능"이라는 '미의 신화'를 재생산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가장, 주부(주인의 아내), 집사람, 내조, 친가, 외가, 미망인, 윤락녀 등."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본주의적 대중 매체가 생산한 가부장제의 신화 속에 살고 있다. 신화는 편견의 사회가 만들어 낸 '동굴'이자 '우상'이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에서 보듯이, 우리가 사는 일상은 대중 매체에 의해 여론이 조작되기도 하며, 현자와 어리석은 자가 뒤바뀌는 곳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주객이 전도되고 허위와 가식이 진리를 지배한다는 비유이다. 동굴이란 다름 아닌 한국 사회의 전통적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이자 성차별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한 국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과 갈등은 다중적이고 다양하게 얽혀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여성의 갈등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가족'을 둘러싼 가부장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가부장제 가족은 전통윤리에서 시민사회로의 이행과 더불어 서양근대초기의 핵가족의 성격을 보이면서도 여전히 "문화적으로는 부계 중심 대가족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따로 핵가족을 꾸리더라도 며느리로서 '시가'와 맺는 관계는 엄연하게 끊임없이 차별적이고 종속적인 관계로 지속된다. 한국사회의 명절 풍습은 이러한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남자는 제사를 모실 몸이므로 깨끗한 양복에 멋진 넥타이핀까지 꽂았다. 아기도 꼬까옷을 입고 예쁜 모자까지 썼다. 그러나 여자는 낡은 티셔츠와 물 빠진 청바지를 꺼내 입는다. 여자는 시댁에 '오직 일하러'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시집에 도착해 현관을 들어서면 여자는 시어머니 얼굴에서 '왜 이제 오냐'는 뚱한 표정을 읽는다. 시어머니는 손주를 덥석 안아 간다. 여자가 아이를 업고 오는 동안 이마에 흐른 땀을 닦기도 전에 '올케, 튀김 해야지'하고 친정에서 사는 손위 시누이가 인사를 대신해 부엌으로 호출한다." (주부 이연경 씨의 '명절 일기', <우리 시대의 결혼 이야기> 중)

문 제는 여성의 자기 정체성이 여성 자신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성이 주체로 서기 힘든 것은 우리 사회의 권력 관계 때문이다. 권력 관계의 핵심은 근대적 가부장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여전히 고부갈등, 동서갈등, 양가 가족(가문)간의 갈등이 부부 중심인 핵가족과 함께 지속되고 있다. 즉 우리 사회는 근대로의 진행 여부와 무관하게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가족 이데올로기가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전근대와 근대, 탈근/현대가 3중으로 중첩되어 있는 '삼겹살문화'에서는 여전히 가족 내의 여성에 대한 시선이 타자의 입장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삼종지도나 출가외인 등의 규범이 정도는 차이는 있지만 암암리에 가족의 권력 구조에 영향을 준다. 가부장제적 문화의 유산은 그 문화 안에서의 구성원간의 권력의 서열 구조를 유지하게 한다. 시가의 어린 도련님에게는 공대를 요구하고 처남에게는 반말이 허용되듯이 대부분의 고부 관계는 경직된 관계를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서열의 권력관계는 고부관계를 역할 위주의 관계로만 보기 때문에 며느리를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으로 볼 수 있는 관계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즉 시어머니로부터의 며느리에 대한 '소외' 현상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 리는 <선택>에서 보여 준 구체적인 여성들의 경험들을 통해서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성과 인간성이 양립하기 힘든 구조적 이유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여성은 타자의 시선, 즉 권력 아래 놓여 있고 그로 인해 여성으로만 대접받기 일쑤다. 여성은 가족과 법, 제도 그리고 문화 등에서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저자는 여성이 어떻게 통제 받는 성이 아니라 자유로운 성을 누리는 성적 주체로서 스스로 자신의 성 경험에 대해 당당할 수 있을까, 어떻게 '백마 탄 환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주부의 가사노동은 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가, 차별고용 차별임금을 어떻게 형평하게 바꿀 수 있을까 등을 실제와 더불어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필자가 보기에 <선택>에는 다양한 페미니즘의 갈래가 제시되고 있지만, 저자는 특히 한국사회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착종되어 있는 사회로 규정하고 있고 대안을 찾으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여성들이 숙명적으로 대결해야 하는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성격과 골 깊은 가부장제에 대해 여성들의 실존적 '선택'과 '결단'을 넘어 여성들끼리 여성의 시각으로 재정립하는 '사회적 연대'를 희망한다. <선택>은 말한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조직하세요!(Don't agonize. Organize!)" "서로가 서로의 지지자가 되는 서포트 그룹(support group)을 만드세요."


혹자가 제기하듯이 여성들만의 '선택'인가?

"세상에 여자만의 문제란 없거나 지극히 적다. 여성이란 말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남성이 있어서이고 따라서 여성의 문제란 언제나 남성과 관련된 문제를 뜻한다. 그런데 상대인 남성을 적대 개념으로 다루고 방법을 투쟁만으로 일관한다면 너희 선택의 폭은 너무 좁고 비극적이 된다. (…) 그런데 내게는 그 <여성의 자기 성취>란 말과 거기 따른 논의처럼 애매하고 수상쩍은 것도 없다. 그리고 수상쩍은 것은 그 애매한 논의로 여성을 충동질하는 저의이다" (이문열, <선택> 중)

이 문열이 '선택'을 구상한 의도는 "우리의 삶에 한 본보기가 될 만한 여인상을 역사 속에서 발굴해 내는 데 있었다." 주인공 장씨(張氏) 부인은 글과 예(藝)에 재주가 있으나 오히려 집안 살림을 선택하고 '가문'을 선택한 400년 전의 실존 인물이다. 물론 장씨 부인의 입을 통해서 비유적으로 현재를 비판하려 했지만,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람이 이문열 자신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 너희 논객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자기의 일을 가져라. 자아를 되찾아라. 남편과 아이들로부터 벗어나라. 가정에서 해방되라. 그런데 내게는 그런 권유들이 마치 자기 성취를 원하는 여성에게는 가정은 감옥이고 남편은 폭군이며 아이들을 족쇄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린다. 현모양처란 무능과 불행의 다른 이름이고 내조와 양육은 허송세월의 동의어인 듯하다." (이문열, <선택> 중)

이 문열의 지적처럼 여성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다. 다만 인간 속에 '여성'이 빠져 있는 가부장제가 문제인 것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현재의 여성의 권리는 놀랄 만치 급신장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더라도 <선택>에서 페미니즘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정치적 상상력'"일 뿐더러, "미래의 성차별 없는 세상에서 온 사람의 눈으로 현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결국 페미니즘이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사회의 재편성"이면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두 주체로 만나 진실로 교감하며 사랑할 수 있도록 세상을 변혁시키려는 운동"이기도 하다.


남는 문제

여 성 문제는 논의의 정합성 이전에 구체적 현실이다. 아직도 '아들딸을 골라 낳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임신법이 판치고 있고, 자신은 여성이면서도 정작 이 사회를 살아야 할 딸(여성)들의 앞날을 걱정스레 예측해 보고, 여성이 여성(딸)을 낙태하고, 여성이 남성(아들)을 선택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는 '동굴'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느새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지배에 익숙해지고, 타자로서 익숙해진 구조에서 '가족'이라는 명분 아래 집단 이기주의를 노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은 더욱 소외되고, 물화되고 주변화 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전략대로 페미니즘이 더 이상 '여성'이라는 단일한 범주에 집착하지 말며 계급, 인종, 민족, 연령 등에 따른 불평등과 다양한 문화적 차이 속에서의 갈등에 주목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 러나 아직도 봉건성과 불완전한 근대성이 압도적인 한국 상황에서 '여성' 범주의 정치적 의미는 저항의 강력한 토대라고 할 수 있다. 푸코의 지적대로 본질적인 여성의 범주가 없다는 논의가 쟁점이 되겠지만, 여전히 한국 상황은 여성임을 인정하게 하는 사회적·정치적 기제가 깔려 있다. 이제까지 역사에서 여성은 타자로서 주변에 머물러왔다. 여성 문제는 은유나 추상성으로 대변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결국 계급, 인종, 민족의 관점을 놓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보편으로서의 여성(인간)을 도출할 것인가가 실천적인 숙제다.


김성민/건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