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redi 26 mars 2008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 (말죽거리에서 타워팰리스까지) /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 2006.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말죽거리 신화’와 ‘타워팰리스’로 상징되는 강남의 역사를 다루면서 강남이 한국의 낯선 자화상임을 보여준다.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자 부러움의 대상으로서 강남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하지만 강준만 교수는 한국, 한국인의 독특한 특성을 강남의 역사에서 읽어낸다. 강남을 비판과 옹호,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경계를 넘어 한국 시스템의 전형이자 엔진으로 바라보면서 ‘강남’과 ‘강남 정신’에 대해 낯설게 보기를 시도하고 있다.

화장하지 않은 한국의 얼굴

강남 신드롬엔 재앙적인 측면이 있다. 그건 동시에 오늘의 한국을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강남은 한국의 세수하지 않은 얼굴 또는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다. 습관적으로 쏟아내는 재앙에 대한 저주의 다른 얼굴이 축복이기도 했다는 걸 깨닫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강남은 아파트 문화의 선구자이고 욕망의 용광로이자 구별짓기의 아성이다. 한국의 초고속 성장을 온몸으로 드라마틱하게 웅변하는 지역이다. 강남이 가장 한국적이다. 아니 강남이 한국이다. 한국이 보릿고개에서 세계 10대 경제국으로 달려왔듯 강남은 말죽거리에서 타워팰리스까지 달려왔다. 전자가 피땀으로 이룬 반면 후자의 달리기는 투기광풍이 아니었느냐는 반문도 가능하겠지만 욕망의 대질주라는 본질에 있어선 다를 게 없다.

욕망과 강남 정신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굴러가게 만드는 동력은 욕망이다. 강남은 한국형 자본주의의 욕망의 위계질서에서 상층부를 점하고 있다. 한국형 자본주의는 강력한 서열화, 강한 경쟁심과 모방심에 의해 움직인다. 그것들은 부정적인 것을 널리 전파시키는 동시에 긍정적인 혁신의 전파 속도도 빠르게 한다. 이것이 ‘강남 정신’이다. ‘강남적’이면 ‘전국적’이 된다. 아파트 재건축에서 아파트 내부 개조 붐에 이르기까지, ‘강남 아줌마’의 호전적 여성성을 잘 보여주는 자녀 교육에서 재테크에 이르기까지, 갈빗집 ‘가든’에서 ‘로데오 거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강남이 행사하는 리더십은 절대적이다.
보다 높은 곳을 향한 무한질주의 정신, 무언가 크게 한몫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그리고 그런 정신과 기대감에서 비롯되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전쟁하듯이 사는 삶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게 바로 강남이다.

아파트와 강남

강남은 아파트다. 아파트는 한국적이다. 아파트는 처음에 현대성의 상징으로 도입되었지만 현대성만으론 부족했다. 공동생활의 불편함과 양변기는 아파트를 기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논밭이었던 강남이 1960년대부터 개발되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강남은 부동산으로 떼돈을 버는 ‘말죽거리 신화’를 이루었고 강남 아파트는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이후 강남 아파트는 구별짓기의 상징이 되었다. 강남을 엔진으로 한 한국의 아파트 보급은 구별짓기를 한국 전역에 확산시켰다. 남들과 구별되고자 하는 욕망이 아파트를 통해 구현된 것이다. 한국의 아파트는 인간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욕망을 타오르게끔 하는 곳이 되었다. 허허벌판에도 들어 서 있고 마을이라고 불리며 외국인들이 슬럼지대로 생각하기 일쑤인 한국의 아파트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현상이다.

대중가요 속의 강남 문화와 아파트

욕망에 불을 지르고 강남 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혜은이는 <제3한강교>를 노래했다. 당시 제3한강교는 강북과 강남의 거리를 좁히고 강남 혁명의 견인차였고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 ‘행복 어린 거리’로 향하는 통로였다.
코리안 드림의 환상과 환락이 넘치던 1980년대 당시 유흥가의 중심이 명동, 종로, 무교동 등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전되었다. 유흥업소란 손님들의 질퍽한 주색 파티 뒤에 접대부들의 애환이 그림자처럼 깔리는 곳이다. 당대의 유행에 민감한 대중가요가 영동문화를 놓칠 리 없다. <멍에>의 애절한 색조와 김수희의 감칠맛 나는 보컬은 사람들을 그 유흥문화의 짙은 뒤안길로 데려갔다. 유혹적이면서도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외모의 김수희와 그녀가 부르는 도시의 블루스는 단숨에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사연 많은 여자’의 이미지를 대변했다.
한편 윤수일은 1980년대 아파트 세대의 내면 풍경을 노래했다. 아파트에서 ‘언제나 나를 기다리’는 것은 다른 트로트 가요 노랫말의 전통적인 문법과는 달리 고향 집, 고향 역이나 어머니가 아니고 아파트다. 도시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아파트를 그리워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윤수일의 <아파트>는 아파트 문화의 고독과 고립을 상징했다. 무언가 단절된느낌을 풍겼다. 그녀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덕분에 그녀의 집을 찾아가는 건 훨씬 쉬워졌지만 아파트는 일반 주택에 비해 훨씬 더 강한 쓸쓸함을 가져다주었다.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1960년대부터 2006년까지의 강남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강남과 아파트를 둘러싼 사건과 논쟁, 분석을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 각 시기의 독특한 현상들을 모아 한 시대를 보여주는 ‘자세히 읽기’란과 각 시기의 분위기를 짐작케 해주는 사진 자료는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인터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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