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redi 26 mars 2008

아파트의 문화사 (살림지식총서 224) / 박철수 / 살림 / 2006

한국에서 아파트는 역사와 문화의 산증인으로 작용한다. 소비와 욕망의 시공간인 아파트의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한 책.

한국인에게 ‘아파트’란 무엇인가

‘세속적 꿈’의 동의어로 받아들여지는 ‘아파트’를 가리켜 ‘거대한 침묵의 조형물’이라거나 혹은 ‘잔뜩 발기한 것처럼 여기저기 솟아있는 거대한 난수표’라 부르며 그 가치를 깎아내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여기에 우리의 ‘아파트’가 갖는 현재성과 삶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대중적 갈구가 응축되어 있다고 말한다.

아파트를 일컬어 거대한 침묵의 조형물이라 하는 것은 ‘아파트단지’가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으려는 심한 자폐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고, 난수표라 일컫는 이면에는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획일성과 평균성 그리고 공간생산의 규칙성과 균질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파트가 이러한 오명에서 벗어나 ‘더불어 사는 문화의 결정체’로 거듭나기를 소망하며, 아파트의 문화사를 찬찬히 소개한다.한국 최초의 아파트
소위 ‘녹지 위의 고층주거’라는 슬로건을 통해 아파트라는 새로운 형식의 주택을 만들자는 서구 근대건축가들의 꿈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모순으로 가득 찬 사회의 일대 개혁과 비위생적인 생활환경의 획기적인 변혁을 추구했던 그들의 혁명은 제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도시의 지형도를 새롭게 바꾸어왔다.

그렇다면 한국 최초의 아파트는? 한국 최초의 아파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서울의 을지로 4가와 청계천 4가 사이에 있는 주교동 230번지에 주식회사 중앙산업이 1956년에 건설한 중앙아파트가 최초라고 지적되기도 하고, 1962년에 도화동에 만들어진 마포아파트를 최초로 보기도 한다. 중앙아파트가 하나의 주거동을 세워 아파트라는 새로운 형식의 주택을 처음 시도한 사례였다면, 마포아파트는 여러 개의 아파트 주거동과 담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주차장과 어린이 놀이터 등의 생활편익시설을 함께 만든 ‘단지식 아파트’의 최초사례로 볼 수 있다.

마포아파트 준공식에는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참석하였다. 그리고 국민을 향해 발표한 치사를 통해 마포아파트 단지를 조국 근대화의 상징이자 생활혁명의 시금석이라고 추켜세우면서 5.16 군사쿠데타의 성과로 그 의미를 부여했다. 아파트와 그의 군사적 정변의 결과를 등가가치로 취급하려는 당시의 정치적 의도는 이미 박정희 정권의 혁명공약에서도 드러난 바 있으며, 그 결과 박정희라는 인물과 그의 시대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파트’를 박정희 시대의 대표적 유산 가운데 하나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아파트 단지는 서구와는 달리 정치적 유산이기도 한 셈이다.

아파트를 둘러싼 말, 말, 말들
한국에서 아파트의 역사는 50여 년에 불과하지만, 이제 도농을 불문하고 ‘아파트’는 우리나라의 보편적 주택유형이 되었다. 저자는 신문 기사와 소설 등을 통해 아파트에 대한 우리의 욕망과 그 변천사를 다채롭게 보여준다.

‘저소득층 주택’ 또는 ‘질 낮은 주택’의 이미지로만 여겨지던 1960년대의 아파트, 중산층의 주택으로 여겨지던 1970년대의 아파트, 저소득층의 내 집 마련 이미지를 강화시킨 1980년대의 아파트, 잠재된 욕망의 분출구로서 변모하기 시작한 1990년대의 아파트 등 저자는 시대별 아파트의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의 다양한 욕구를 드러낸다. ‘가짜 집’, 속물들의 집, 재건축 아귀다툼의 현장, 과밀의 소음 도가니, 침묵의 조형물이라는 아파트의 여러 이미지는 바로 소득계층간의 위화감, 돈을 좇는 욕망의 분출과 가족의 해체, 도시유목민의 부유와 배회, 자폐증과 우울증 등으로 점철된 우리사회의 이면을 증언하는 것이다.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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