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udi 29 janvier 2009

佛선교사의 ‘조선시대 감옥’ 체험기 - 문화일보 / 2009-01-23

나의 서울 감옥생활 1878 / 펠릭스 클레르 리델 지음, 유소연 옮김 / 살림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포도청) 죄수들은 주로 세 부류로 나뉜다. 도둑, 채무 죄수, 그리고 우리 같은 (천주교) 신자들, 이렇게 세 부류인데, 옥 안에는 신자들이 대다수였다. 이 세 부류의 죄수들은 각각 다른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도둑들의 처지는 가장 비참하였다. 대략 30여 명이 있었는데, 밤이고 낮이고 발에 차꼬를 차고 있으니 모두 병에 걸린 상태였다. 옴이 온 몸에 올라 상처 부위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조선교구 제6대 교구장으로 1877년 11월 입국해 포교활동을 펼치다 석 달 남짓 지난 다음해 1월28일 포도청 포교들에게 붙잡힌 펠릭스 클레르 리델(1830~1884) 주교가 남긴 서울 감옥 생활 회고기는 19세기 조선의 감옥문화를 잘 보여주는 1차 사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책은 이명복(李明福)이란 한국 이름을 가진 리델 주교의 회고록을 아드리앵 로네 신부가 편집·정리하고 해설을 붙여 1901년에 펴낸 것을 저본으로 하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과 명지대, LG연암문고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한국학 관련 희귀자료의 국역사업인 ‘그들이 본 우리’ 총서 제6권으로 나왔으며 로네 신부의 간행물에 빠져 있는 회고록의 일부 내용을 되살려 우리말로 옮겼다.

리델 주교는 조선과의 인연이 각별한 프랑스 선교사다. 프랑스 낭트에서 태어난 뒤 사제 서품을 받고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간 그는 1861년 조선에 잠입해 5년간 포교활동을 펼치다 1866년 3월 병인박해가 터지자 이를 피해 중국으로 피신했다. 같은 해 7월 톈진(天津)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조선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를 알렸고, 이어 9월 조선인 신도 3명과 함께 프랑스 함대의 강화도 침략(병인양요) 당시 길 안내를 맡기도 했다. 1878년 서울 포도청에 투옥됐다가 5개월 뒤 석방과 함께 중국으로 추방된 리델 주교는 조선에서 잡히고도 사형당하지 않은 최초의 선교사로도 유명하다. 이후 그는 중국 만주에 머물며 최초의 한국어 문법서인 ‘한어문전’과 ‘한불자전’을 저술했다.

책은 리델 주교가 1878년 1월28일 서울에서 체포, 투옥된 뒤 같은 해 6월10일 석방돼 만주에 당도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회고한 것이다.

특히 죄수들의 비밀 정보를 염탐하기 위해 걸인 행색을 하고 옥간에 눌러 있는 포도청 소속 비밀경찰이나 옥졸들의 구타로 시체가 돼 몰래 성문 밖에 버려지는 죄수의 실태, 포도청 감옥의 구조도 등 조선 감옥에 대한 다양하고 생생한 기록들을 남겨놓은 게 특징이다. 도둑들은 작은 밥사발에 아무런 간도 하지 않은 밥을 담아 아침저녁으로 먹는 게 전부지만, 채무로 투옥된 죄수들은 친지나 벗들과 서로 연락도 할 수 있고 밖에서 음식을 받아 먹었다. 대다수가 정부 관원이었던 이들은 심지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거나 굶주리고 있는 도둑 죄수들이 보는 앞에서 대향연을 벌이기도 했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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