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11 mai 2009

근대한국의 사회과학 개념 형성사 / 하 영선 외 지음 / 창비

민주·경제·주권… 근대학문 개념의 뿌리를 찾아 / 조선일보 / 2009-04-29

하영선교수 '전파연구' 모임 15년 연구결과 책으로 펴내
"지금도 가끔 이름을 보고는 전기·전자 분야를 연구하는 이공계 모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 영선(62)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1995년부터 동료·후학들과 함께 '전파(傳播)연구'라는 공부 모임을 이끌어왔다. 서구의 근대 개념이 한국에 어떻게 도입되고 수용됐는지를 연구하는 모임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과학이 서구 학문의 수입상에서 벗어나 창조적 변화를 모색하려면, 먼저 우리 학문에서 쓰는 개념의 뿌리를 찾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이들은 먼저 《서유견문》 《독립신문》 《윤치호일기》 같은 개화기 문헌을 꼼꼼히 읽어나갔다. 전통 학문의 기반 아래 서구 근대의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치른 지적(知的) 전투의 현장을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개념 전파의 길목에 있었던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와 중국의 양계초(梁啓超) 저작들을 읽었고, 유럽 근대 사회과학 개념의 기본서들을 훑었다.

▲ 한국 사회과학 개념의 뿌리 찾기에 나선‘전파 연구’회원들이 토론하고 있다.

이번 주 나온 《근대한국의 사회과학 개념 형성사》(창비)는 '전파연구' 15년 공부의 성과다. 하영선·최정운·신욱희·장인성(이상 서울대) 강동국(일본 나고야대) 김영호·김용직(이상 성신여대) 손열(연세대) 교수와 김석근 박사, 이헌미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원 등 10명이 함께 썼다. 개인·주권·부국강병·민주주의·경제·세력균형·국민/민족·평화 같은 근대 개념들이 어떻게 19세기 한국 사회에 수용됐는지를 추적했다.

김 석근 박사는 근대의 기본 개념인 'Individual'이 서구에서 탄생하고, 19세기 일본에서 '개인'으로 번역된 후, 한국 개화기에 수용되는 과정을 살핀다. 박영효와 유길준은 '개인'이 갖는 의미를 대체로 파악했지만, 문제는 개인이 당시 현실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개인'이란 과제는 자주독립, 부국강병 등 보다 절박한 과제 뒤로 밀려나게 됐다.

민 주주의 수용을 다룬 김용직 교수는, 1880년대 초반 《한성순보》 등을 통해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소개됐으나 사상적·제도적 수용으로 발전하지 못하다가, 독립협회 등장과 함께 실질적인 서양의 민주주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국내 보수세력의 반대와 외세 개입, 낙후된 대중정서 때문에 민주주의는 당시 조선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 영선 교수는 "19세기 후반 한국의 정치·사회 세력들은 지나치게 양극화되어 대립이 심화됐고, 당시의 문명사적 변화를 균형 있게 개념화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국제 정치무대에서 밀려났다"면서 "개념화의 식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지금도 19세기 같은 난관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파연구' 모임은 올해 안에 〈유길준 전서〉의 중요 부분을 번역하고, 《유길준 다시 읽기》(가제)를 펴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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