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16 février 2009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 서경식 지음 / 철수와영희

‘한국인’이란 누구인가 - 문화일보 / 2009-02-06

디아스포라(Diaspora)는 이 책의 저자인 재일 조선인 2세 서경식(도쿄게이자이대 현대법학부 교수)에 의해 한국 사회에 일반적으로 그 의미가 인식됐다. ‘이산(離散) 유대인’을 뜻했던 이 말은 우리말로 딱부러지는 단어는 없지만 전쟁과 기아 등에 의한 ‘이산자’ 또는 ‘난민’ 정도로 쓰이다 지금은 ‘타자’ ‘소수자’의 의미를 더 함축하고 있다.

저자같은 재일 조선인이 ‘고전적인’ 디아스포라다. 가난을 피해 식민지 조선을 떠난 부모의 조국에도, 태어나고 자란 일본에도 ‘속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경계인 그래서 그들에겐 국민·국가·고향이라는 단어들은 항시 스스로에게 존재에 대한 물음을 불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라는 세계적 환경의 변화에서 디아스포라는 계속 양산되고 있다. 예컨대 가난을 피해 한국인 남자와 결혼한 외국인 여성들과 그들이 일구는 소위 ‘다문화 가정’도 ‘고전적인’ 디아스포라에 가깝지 않을까. 불법체류를 감내하며 한국에서 노동을 파는 외국인 노동자들 역시 다를 것 없는 디아스포라다.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자본에 따라 이제 노동도 국경을 훨훨 넘나든다. 이들은 ‘자발적’ 디아스포라로 불러야 할까. 거기다가 인터넷은 ‘디지털’ 디아스포라를 만들어 낸다. 서 교수가 애초 ‘좁게’ 제기한 ‘디아스포라의 시각’은 지금은 폭넓게 이 어려운 시대에 요청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2006년부터 2년 동안 연구휴가를 얻어 한국에 머물면서, 국민, 국가, 고향, 죽음, 희망, 예술을 주제로 한국의 시민운동가와 학생,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속 강연과 세미나 내용을 엮은 것이다. 그의 책들은 이미 한국에서 10권이 넘게 출간돼 이번 책이 아주 색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가 아주 최근에 그리고 짧다고는 할 수 없는 기간을 한국에 머물며 녹여낸 생각들이어서 이전 책과 감도가 다르다.

“진보적인 한국 사람들마저도 ‘고향’ ‘가족’ ‘국가’ ‘민족’ ‘성’ ‘죽음’ ‘아름다움’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 아직까지 기존의 사회통념에 사로잡힌 듯 보인 것은 무척 의외였다.”

이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한국사회가 근래 20~30년 사이, 상당히 진보적인 변화를 추동해왔음에도 여전히 그 근저에 남아있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저자는 이 당연한 것을 다시 묻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시각이다.

저자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고향’ ‘가족’ ‘국가’ ‘민족’ 같은, 우리가 한번도 의심하지 않은 말들은 기본적으로 ‘타자’를 배제하면서 생겨난 것들이다. 단적으로 디아스포라들에게 있어 ‘동화’와 ‘배제’는 같은 의미다. 근래 우리가 관심을 가지려 노력하는 ‘다문화 가정’에 대해 저자는 이의를 달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과 농촌에서 아시아 여성과의 국제결혼이 봇물을 이루는 작금의 한국상황은 1980년대 일본에서 먼저 나타났다. 당시 일본도 “다문화 시대가 왔다” “단일민족적 사고방식을 극복해야 한다”며 외쳐댔다.

그 대안은 외국인들에게 일본말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소위 ‘동화’를 돕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일본말을 안 배우면 살기 어려운 사회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배제’의 관념이다. 저자는 “다문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소수자를 얼마든지 억압할 수 있다”며 “국제화와 동화를 부르짖으며 외국인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일본어를 배우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사회를 유지했던 일본 사회가 올바른 것인가”를 묻는다. 즉 일본 속 이방인으로 모어(母語)인 조선어를 잊어 버려야 했던 우리 조상의 관점에서 볼 때 다문화 가정의 문제나 재일 조선인 문제 역시 정확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이라는 것도 타자를 배제하는 틀이다. 1948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건국되고 국회의원들이 국적과 국민을 규정하면서 19세기 말부터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동아시아, 중국 동북 지방이나 산둥성, 일본이나 대만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은 이때부터 대한민국 국민에서 배제됐다. 국민과 국적 같은 문제는 ‘누가 국민인가’보다 ‘누가 어떤 생각으로 정했는지’를 따지고 생각해봐야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이밖에도 죽음, 희망, 예술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라는 ‘다수’ ‘일체성’ 대신 ‘타자’의 입장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며 물음을 던진다. 저자는 “당연하다고 굳게 믿는 전제를 다시 의심하고, 보다 근원적인 곳까지 내려가서 다시 생각해보는 것, (…) 자신을 기존 관념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기어이 정신적 독립을 얻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참된 지적태도라고 나는 믿는다”고 말한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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