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16 mars 2009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 / 가노 마사나오 / 삼천리

인물로 본 일본의 근대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출간
연합뉴스

동아시아 주변국에 불과했던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을 통해 아시아 최강국으로 도약했다. 수십 년만에 서구 열강에 뒤지지 않는 비약적 발전을 일궈낸 일본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저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가노 마사나오 일본 와세다대 명예교수는 최근 번역출간된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삼천리 펴냄)을 통해 이 같은 일본의 발전에는 사상가들의 힘이 컸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친일 지식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부터 대표적인 친한파 지식인 야나기 무네요시까지 근대를 살다간 일본 사상가 50인을 조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후쿠자와는 윗사람에 비굴하고 아랫사람에 오만한 일본인의 태도에서 사회의 병폐를 찾았다. 이를 ’정신의 노예’라고 주장하는 후쿠자와는 자유로운 독립체인 ’국민’을 통해 이 같은 병폐를 없애자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개혁 정신은 전적으로 일본에만 국한됐다. ’아시아에서 벗어나라’는 탈아론(脫亞論)은 “우리 일본국은 잡아먹는 자의 대열에 끼여 문명국 사람들과 더불어 같이 좋은 먹이를 찾아야한다”는 제국주의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었을 뿐이었다.

반면 제국주의를 ’20세기의 괴물’이라 묘사한 무정부주의자 고토쿠 슈스이는 후쿠자와와는 정반대 입장에 서 있던 인물이다.

신채호를 동아시아 아나키즘의 원조로 평가한 그는 사회주의를 “세계평화의 이념”이라고 주장했고, 점차 노골화되는 한국 점령에 대해서는 일본이 드디어 “마각을 드러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대표적인 반제국주의자였다.

타고난 반골기질을 바탕으로 시대 정신에 역주행했던 그는 결국, 천황암살 계획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1911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마흔살의 젊은 나이였다.

“천황아래에 만민평등”을 주장한 기타 잇키, “동양은 결합해야 한다. 하지만 결합과 정복을 통한 통일을 혼돈해서는 안된다”고 말한 야나기 무네요시, “만주를 포기하고, 조선과 대만의 독립을 인정하라”고 주장한 저널리스트 이시바시 단잔도 비중있게 소개된다.

이밖에 대안교육과 생활글쓰기 운동(노무라 요시배에), 환경운동(나다카 쇼조), 여성해방운동(히라쓰카 라이초) 등 다양한 운동에 참가했던 사상가의 삶도 조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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